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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시인 / 닭인가 토끼인가?
저 게 닭장인가 토끼장인가? 그것을 덮고 있는 두꺼운 모직 담요. 누가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것밖에 그것밖에 없는
인생(人生), 닭장인가 토끼장을 열고 그 위에 덮인 두꺼운 담요를 벗기려 하고 있다.
담요는 벗겨지지 않는다. 토끼장인가 닭장은 열린 곳이 아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계속 난다. 그림자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담요를 벗기려고 하고 문을 열려 한다. 모두 잊은 곳에서
내가 담요를 거들어주려고 한다. 닭장인가 토끼장 문을 열려고 한다. 햇빛 아래 닭인가 토끼를 마주하려고 한다.
닭인가 토끼? 도대체 토끼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닭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격월간 『시와 표현』 2019년 3~4월호 발표
박찬일 시인 / 두 마리의 사람
사람 속에 개가 있다. 개가 나서기도 하고 사람이 나서기도 한다.
개와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개 속에 사람이 있는 경우도 만나지 못한다.
개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 개가 되기도 하나 함께 있지 못한다. 개로 사람을 방문하지 못하고 사람으로 개를 방문하지 못한다. 별개라는 말이다.
개에 대한 기억도 없고 사람에 대한 기억도 없다. 별개의 방에서 개는 개를 추억하고 사람은 사람을 추억한다.
죽어서 하나가 되지만 개였던 줄 모르고 사람이었던 줄 모른다. 개로 죽으면 갠 줄 알고 사람으로 죽으면 사람으로 안다. 개와 사람이었던 줄 모른다
시집 『아버지 형이상학』(예술가, 2017) 중에서
박찬일 시인 / 초록 무덤
무덤이 빙산의 일각이란다. 거대한 무덤이란다, 지구가.
무덤 위에 무덤이, 무덤 위에 무덤이 쌓이고 쌓여,
단단해졌단다. 동글동글해졌단다. 초록 풀이 입혀졌단다.
바다가 무덤 아닌가요? 죽은 자를 물에 타서, 죽은 자에 죽은 자를 타서, 초록빛을 내는.
그렇단다. 그래 지구가 초록이란다. 초록무덤이란다.
시집 『모자나무』(민음사, 20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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