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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지관순 시인 / 크림치즈와 비둘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2.

지관순 시인 / 크림치즈와 비둘기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먹고 난 후

  내가 당신의 자기가 된 이유

  설명하기 전혀 어려워요

 

  난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고

  시선을 번뜩이며

  <도시형 비둘기 뒷다리의 검은 반점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으니까

  기자를 잘못 말씀하신 거겠죠 네네

 

  크림치즈를 베이글 사이에 바르는 건

  두 쪽 난 세상을  

  부드럽게 접착시켜 보려는 것인데

 

  두툼한 유리는  

  비둘기와 카페 사이를 두 쪽 내놓고

  저리도 맑게 웃고 있고

 

  옆 테이블 키스하는 남녀는

  아무리 봐도 두 쪽인 입술을

  크림치즈 없이도 저렇게 잘 붙이고 있고

 

  냅킨을 접는 참에  엄지와 검지에

  끼워 동서남북 놀이를 해보는 거죠

  이쪽 저쪽 요쪽 조쪽

  네 쪽 난 세상보다 더 자세하고 정교한

  여섯 쪽 난 세상도 알지만

  그건 출생의 비밀 같은 거니까

 

  유리 밖 비둘기가  

  저 쪽에서 이 쪽으로 날아올 때

  두 쪽은 사라지기도 해서

  어.어.어.

  평화유리가 깨지는 순간

 

  나는 왜 큰 소리로 외쳤을까요

 

  자기 좀 봐!

  아니 저기. 저어기겠죠 네네

 

계간 『사이펀』 2018년 여름호 발표

 

 


 

 

지관순 시인 / 아르페지오

 

 

  창문을 열고 너를 덮은 기분이야,  

  나는 말했고 너는

  바람이 골목과 헤어지는 기분이야, 말했다.

 

  타공을 통과하며

  너와 나는 부드럽게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너와 나는 서로를 입어보고  

  바람과 골목은 서로 들춰보고 있다.

 

  내게 꼭 맞는 것 같아

  넌 모서리가 아름답구나.

 

  도대체 언제까지 떨어지는 거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네가 울 때

  나는 멈추기를 희망하면서

  멈추는 것을 절망하기 시작한다.

 

  솜털 냄새가 난다  

  지난 계절에 돋은 물의 노래가

  지느러미를 흔들며 체를 빠져나간다.

 

  얼마나 흔들려야 창문이 깊어질까

  장미에서 밤까지

  너에게서 나를 꺼냈다.

 

  봄비 오는 날엔 주머니에 손을 찔러도 봄비가 오고

  아몬드를 깨물지 않아도 봄비가 온다.

 

  바람에서 골목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계간 『문학과 사람』 2018년 여름호 발표

 

 


 

지관순 시인

제10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 2015년 《시산맥》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