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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안나 시인 / 앨리스의 사물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2.

서안나 시인 / 앨리스의 사물들

 

 

3분에서 5분 동안 당신은 고장 날 것입니다

썩은 세계는 충분히 아름답다

 

커피를 마시면 3분 뒤에 나는 커피 마신 사람이 된다 몸을 기울이면 빈 곳이 생긴다 설탕이 없었다면 노예가 없었을 것이다 결핍은 결핍을 이해한다

 

식은 감정에 물을 주면 얼굴이 고장 났다 헬멧을 쓰면 우주에 온 것 같다 고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개인은 비범해진다

 

누군가 내게 멋진 갈색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검은 말들이 뛰어온다고 적었다 강물 속에서 누군가의 우리를 부르고 있다 어머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오후였다

 

감정이란 감정 따위를 손톱으로 눌러 죽이는 것 그가 말했을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을까 나는 여러 개이므로 여러 번 부끄러워진다 오늘 저녁은 내 얼굴에서 달아날 것이다 이,별에도 봄이 온다라고 누군가 문자를 보내왔다 몸을 기울이면 빈 곳이 생긴다 손가락이 끈적거렸다

 

월간 『현대시학』 2016년  4월호 발표

 

 


 

 

서안나 시인 / 14쪽

 

 

증명사진 같은 꽃들

뒤집으면 폐허입니다

 

하루에 세 번씩 낙서했습니다

일기는 수치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살아남은 1루의 타자처럼

기침을 쏟아내며 일기장에 서 있는 너는

누구니?

청춘은 권장 사항과

주의사항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4쪽은

떠나는 사람을 잡으려는 오후 7시

수면제 먹은

사촌 여동생의 흰 손이 놓여있습니다

 

노력하는 아이들

노력만 하는 아이들

쇠줄에서 달아나려는 검은 개들이 짖습니다

이 저녁은 누구의 것입니까

 

응급실은 실내체육관처럼 고요합니다

멍든 새가 날아간 침대는 친절합니다

 

꾹꾹 눌러 쓴 영혼은 무섭습니다

 

계간 『문학과 사람』 2019년 봄호 발표

 

 


 

서안나(徐安那) 시인

1990년 《문학과 비평》겨울호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 동시집 『엄마는 외계인』,동시집 『엄마는 외계인』과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 연구서 『현대시의 상상력과 감각』, 편저『정의홍전집 1․2』가 있고 『전숙희 수필선집』엮음. 현재  <서쪽>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