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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명서 시인 / 슬픔이 생기게 된 배경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6.

김명서 시인 / 슬픔이 생기게 된 배경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둔다.

 

  불면이 문장을 긁고 간다.

 

  링거를 꽂은 침대

  살비듬을 털어내고

  도둑처럼 다녀가는 불면에 대해 거미에게 수사를 의뢰한다.

  달팽이관에 낀 소음을 꿈 너머로 돌려보내려는데

  소음이 침대 모서리에 부딪친다.

  쨍그랑, 실금이 간다.

 

  꿈은 유일한 도피처였다.

  이미 슬픔이라 불러도 되는 무저갱 시간들

  꿈을 현실로 현실을 꿈으로 치환하는데

  비몽(悲夢)은 꿈이란 이름 뒤에 숨는다.

 

  또 한 차례

  빗줄기가 문장을 긁고 간다.

 

  한참 후 ,

  알게 된 사실들

 

  슬픔에는 바닥이 없다는 것

  바닥에도 바닥의 바닥이 있다는 것

  발이 온전히 바닥에 닿아야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

 

  동지 지나고

  난청이 심해졌는지 묵언마저 삐걱거린다.

 

  비상하는

  새를 보면

  새가 되고 싶다고, 가장 멀리 날 수 있는 붕새가 되고 싶다고

  먼 곳에 눈길을 얹어둔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6월호 발표

 

 


 

김명서 시인

2002년 《시사사》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야만의 사육제』(한국문연, 2016)가 있음.  현재〈노이즈〉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