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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렬 시인 / 공터를 지나며
퇴근길의 전철역과 집 사이 중간쯤에 놓인 그 빈터는 아무런 개인사의 흔적도 없이 그저 잡초로 덮여 있다. 삼면이 집들로 싸여 있는 대로변의 그 땅은 꽤 값이 나갈 법도 한데 나는 그곳을 지나며 혹시 그곳에 무덤을 들이면 어떨까, 물론 근린의 연립주택 주민들이 결사항전을 벌이겠지만, 그런 묘지가 아니라
나의 말들, 태어났지만 그냥 묻힌 시라든가, 누구에게도 내밀지 못한 부끄러운 고백과 같은 가여운 사산아들을 한 귀퉁이에 묻는다면 시청직원이 허가할지도 몰라 그러면 그 목질성분이 그늘에 심은 닥나무의 양분이 되어 오랜 후에 어느 시골집의 창호지로 생겨난다면 그래서 겨울 칼바람에 떨리는 소리를 낸다면 외로운 박새가 귀 기울일 수도 있고
이별을 예감했는지 내가 짐을 싸며 간식을 물려주었을 때 그토록 좋아하는 먹이를 입에 문 채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멍멍이 루이의 영혼이 그 집을 지나다가 나의 손길을 그리워하며 머물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에 잠겨 공터에 머물다가 나는 아파트 계단을 쉬지 않고 올라 갑자기 돋은 생의 식욕에 얼른 식사를 마치고 어젯밤에 노트로 옮긴 옛 소설가의 참으로 가슴 아픈 문장*의 무릎에 굳은 각질을 닦아주는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그 후」: <어차피 하나의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될 운명에 봉착할 것이 틀림없다. 그때 그는 조용히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차림을 하고 거지처럼 뭔가를 찾으면서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서성일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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