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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서안나 시인 / 웃방 문간의 그 사람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5.

서안나 시인 / 웃방 문간의 그 사람

 

 

  정지용의 시를 오래 읽었네

  시집엔 영혼이 살아 뭉클하지

 

  “옛이야기 구절” 3연에는

  타관을 떠돌다 온 젊은 남자가

  시의 행간에서 밤 이슥하도록

  식구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네

  문간에서 아내는 서서 듣고

 

  나가서도 고달프고 돌아와서도 고달픈 사내*

  큰 독 안에 실린 슬픈 물같이 속살대는 시골 밤**

 

  사슴 가죽 쓴 듯

  흰 얼굴로 웃방 문간에서

  이녁의 이야기를 엿듣는

  그 사람

 

  소리 없는 웃음으로 번져가는

  그 사람의 밤이

  손끝에 아프게 와 닿네

  아픈 손가락으로 시집의 글자를 짚어보네

  문장과 문장이 부딪혀 피가 돌고

  느리게 느리게 안부가 퍼져나가네

  타관을 떠도는 눈동자가 되네

 

  지용도 정작

  그 사람에게

  건네는 이야기였으리라

  목소리만으로

  문풍지처럼 떨리는

  그런 밤이었을 것이라

 

*정지용의 시 「옛이야기 구절」에서 인용.

**정지용의 시 「옛이야기 구절」에서 인용.

 

계간 『시와 사람』 2018년 여름호  발표

 

 


 

서안나(徐安那) 시인

1990년 《문학과 비평》겨울호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푸른 수첩을 찢다』, 『플롯 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와 평론집 『현대시와 속도의 사유』가 있음. 현재  <서쪽> 동인이며 한양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