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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은산 시인 / 버팀목의 칸탄도(Cantando)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5.

고은산 시인 / 풍경의 문장

 

 

동쪽의 살결을 벗겨가는 햇살들이

사라지고 먹구름이 덮쳐간다.

날씨 방향 나침반은

외로운 지향성을

유지하고

평온을 상실할 때

발톱 끝의

허공에 대한 타격 쪽으로

이끌린다. 바람의 객지에 대한

응답이 세차면 세찰수록 비참해질 수 있다.

 

1.

 

지구 대서양 한 쪽에서 바람이 찢어놓은 형상은 헐거운 혁대의 감각으로 흩어져 운다. 그 바다 한 쪽에서 폭풍우의 강한 갈퀴 속성들 사방으로 뒹군다. 지상에선 그 폭풍우 영향으로 많은 수직의 형태들 평면으로 납작 엎드린다.

 

기상예보의 냉소적 발음들을 지느러미로 밀어내고 해양을 가로지른 원양어선의 현재는 참혹하다. 그릇된 출항 결정으로 빚어진 핏기를 상실한 입술의 개수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슬피 운다.

 

한낮, 태양 광선이 죽은 곳은 가끔 대재앙의 뼈다귀들을 풀어 놓는다.

 

이어진 해외 뉴스에서 이국 땅, 어느 해변 쪽 가난한 어민들의, 폭우로 인한 흙탕물의 박편들을 너는, 포르말린 눈빛으로 보고 망막 일부가 먹먹해진다.

 

빈민들의 목구멍으로 드나드는 부패한 식성들,

 

2.

 

너의 머무는 곳으로 사방을 훑으며 건너 온,

태풍의 근력이 폐차장쪽으로 머리를 기울인다.

바람의 할퀴는 손끝으로 매달린 눈시울은 폐지로 된 문장을 읽는다.

운명을 고민하던 집이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다.

병풍으로 존재하던 모든 보호막들이 위태롭고 그 형태들이 안절부절 못한다.

난파선의 깃발을 움켜쥔 네 심장 쪽으로 상어 이빨이 으르렁댄다.

 

한 빈농의 작고 헐거운 비닐하우스가 머리를 잃고 황폐한 배꼽을 드러낸다.

 

모든 형태의 재난 재갈은 단단한 퇴비들의 뭉침,

 

모든 재난의 입덧은

생포된 포로들의 감각처럼 나타난다.

거칠게 발가벗겨진 피부를 옹호하는 지상의

많은 혀들 그들의 혀 위에

쌓이는 자비심,

 

풍경처럼 울리는 그 혀들의

문장 구사들이

재앙에 허덕이는 빈자들에게

자몽의 삶을 이끈다.

 

빈자들의 안구 속, 등대 불빛이

만선으로 쌓인다.

 

시집 『실존의 정반합』(시산맥, 2016) 중에서

 

 


 

 

고은산 시인 / 버팀목의 칸탄도(Cantando)

 

 

  제비갈매기 날개 문양의 해변 외줄기 침묵의 호소가

  넓은 바다 중심에서 자디 잔 파란을 낳으며 흩어지고

  바다 속 심도(深度)만큼 촉촉한 눈망울이 침잠된 몰골로

  한나절 송진의 낱말을 한 소쿠리 담았다

  한 어부의 한숨 소리 서너 가락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 머물고

  그의 발톱 두께만큼 힘겨운 물살이 물기슭을 훑으며

  각막의 두께로 떨어지는 햇빛을 주워 담았다

  그의 어깨가 짊어진 부레의 축적들은

  지난 시간들의 태엽을 스르르 풀었다

  허리뼈 사이 휘어져 통발에 담기는 기억 몇 줄이

  섬초롱꽃으로 피어올랐다

  그의 입술 사이, 뻐끔거리는 취객의 객기로

  세상 쪽을 향해

  툭, 툭 뱉어지는 가래침들

  그 객기 속 녹초의 해초빛 염색체 하나가

  노총각의 단어를 혓바닥에 지긋이 얹어놓았다

  어선의 촘촘한 그물망 안 밖으로 비집고 드나든 마흔을 넘긴

  그의 팔 힘줄은 그 동안 꺼멓게 축적된 햇빛으로

  더욱 담금질되어가는 유일한 그의 버팀목이었다

  몇 달 전, 그 버팀목 빨판이

  그의 등뼈 마디 매끈매끈한 연골과

  첼로 소나타 마지막 악장, 칸탄도 안색으로 맞닿았다

  해변 포구 한 쪽에 자리 잡은 혼자 사는 집에선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바람 한 점이 깊은 보조개를 한

  아카시아의 얼굴로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그 보조개는 살짝, 제법 보기 좋게 깊어져 갔다

  사실, 다른 마을에 사는 아낙의 집어등 불빛을 닮은 목소리가  

  그의 저릿한 갈비뼈 사이에 쌓여가며  

  몇 달이 흐른 것이었다

  며칠 전, 그 목소리 하나가

  그의 두터운 손바닥을 꼭 쥐었다

  그의 손바닥 굵은 각질을 한 땀 한 땀

  예쁘게 벗겨내는 그 집어등 불빛 몇 개,

 

  그리고

 

   그의 큰 굴레가 그녀의 이마 은물결로 흘러 잔주름 속에 가득 담겨지자

  그의 혀 밑 촉감은

  머리맡에서 월계수 잎 향기로 느껴졌다

 

  지금, 그의 기울어진 집 기둥이 반듯하게 일어서는 소리가

  푸릇푸릇 귓바퀴 속에 쟁여지고 있다

 

시집 『버팀목의 칸탄도Cantando』(고요아침, 2013) 중에서

 

 


 

고은산 시인

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말이 은도금되다』(리토피아,2010), 『버팀목의 칸탄도Cantando』(고요아침, 2013)와 『실존의 정반합』(시산맥, 2016)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