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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이육사 시인 / 편복(蝙蝠)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7.

이육사 시인 / 편복(蝙蝠)

 

 

  광명(光明)을 배반(背反)한 아득한 동굴(洞窟)에서

  다 썩은 들보라 문허진 성채(城砦) 위 너 헐로 도라단이는

  가엽슨 빡쥐여! 어둠에 왕자(王者)여!

  쥐는 너를 버리고 부자집 고(庫)간으로 도망했고

  대붕(大鵬)도 북해(北海)로 날러간 지 임이 오래거늘

  검은 세기(世紀)에 상장(喪裝)이 갈갈이 찌저질 긴 동안

  비닭이 같은 사랑을 한번도 속삭여 보지도 못한

  가엽슨 빡쥐여! 고독(孤獨)한 유령(幽靈)이여!

 

  앵무와 함께 종알대여 보지도 못하고

  딱짜구리처름 고목(古木)을 쪼아 울니도 못하거니

  만호보다 노란 눈깔은 유전(遺傳)을 원망한들 무엇하랴

  서러운 주교(呪交)일사 못외일 고민(苦悶)의 잇빨을 갈며

  종족(種族)과 횃(▩)를 일허도 갈곳조차 업는

  가엽슨 빡쥐여! 영원(永遠)한 「보헤미안」의 넉시여!

 

  제정열(情熱)에 못익여 타서죽는 불사조(不死鳥)는 안일망정

  공산(空山) 잠긴달에 울어새는 두견(杜鵑)새 흘니는피는

  그래도사람의 심금(心琴)을 흔들어 눈물을 짜내지 안는가?

  날카로운 발톱이 암사슴의 연한간(肝)을 노려도봣을

  너의 머―ㄴ 조선(祖先)의 영화(榮華)롭든 한시절 역사(歷史)도

  이제는「아이누」의 가계(家系)와도 같이 서러워라!

  가엽슨 빡쥐여! 멸망(滅亡)하는 겨레여!

  운명(運命)의 제단(祭壇)에 가늘게 타는 향(香)불마자 꺼젓거든

  그많은 새즘승에 빌붓칠 애교(愛嬌)라도 가젓단말가?

  상금조(相琴鳥)처럼 고흔 뺨을 채롱에 팔지도 못하는 너는

  한토막 꿈조차 못꾸고 다시 동굴(洞窟)로 도라가거니

  가엽슨 빡쥐여! 검은 화석(化石)의 요정(妖精)이여!.

 

유고 시집 『육사시집』(서울:서울출판사) 중에서

 

 


 

이육사 [李陸史, 1904.4.4~1944.1.16] 시인

본명은 이원록(李源祿). 다른 이름으로는 이활(李活), 이원삼(李源三), 육사(肉瀉), 이육사(李戮史), 이육사(二六四). 경북 안동에서 출생. 부친은 퇴계 이황의 13대손(이가호)이며 모친은 의병장 허형의 딸(허길). 유년기에 조부祖父에게서 소학을 배우고 도산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16세 무렵 대구로 이사.

1921년 결혼 후 백학학원에서 수학.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고등예비학교에서 1년간 재학. 1925년 귀국, 대구 조양회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항일단체에 입단. 1926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중국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중퇴하고 귀국. 그해 장진홍 의거(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3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소. 1930년 중외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입사, 기자활동을 하면서 은밀히 항일활동을 펼치다가 1932년 다시 중국행. 항일활동 인사들과 접촉 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교. 귀국 후 다시 구속되었다가 석방, 문필활동을 펼치던 중 1943년 피검, 북경으로 압송되어 1944년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순국. 첫작품은「황혼」(『신조선』,1933).「절정」, 「광야」, 「청포도」, 「꽃」, 「황혼」 등의 대표시를 남겼으며, 1946년 비평가인 아우 이원조의 편집으로 유고 시집 『육사시집』 출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