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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정희 시인 / 쓸쓸한 날의 연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7.

고정희 시인 / 쓸쓸한 날의 연가

 

 

내 흉곽에 외로움의 지도 한 장

그려지는 날이면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지를 쓰네.

 

갈비뼈에 철썩이는 외로움으로는

그대 간절하다 새벽 편지를 쓰고

허파에 숭숭한 외로움으로는

그대 그립다 안부 편지를 쓰고

간에 들고나는 외로움으로는

아직 그대 기다린다 저녁 편지를 쓰네.

 

때론 비유법으로 혹은 직설법으로

그대 사랑해 꽃도장을 찍은 뒤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부치네.

 

비오는 날은 비오는 소리 편에

바람부는 날은 바람부는 소리 편에

아침에 부치고

저녁에도 부치네.

 

아아 그때마다 누가 보냈을까

이 세상 지나가는 기차표한장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네.

 

1990년 제4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중에서

 

 


 

 

고정희 시인 / 꿈꾸는 가을 노래

 

 

들녘에 고개 숙인 그대 생각 따다가 반가운 손님 밥을 짓고 코스모스 꽃길에 핀 그대 사랑 따다가 정다운 사람 술잔에 띄우니,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늠연히 다가오는 가을 하늘 밑 시월의 선연한 햇빛으로 광내며 깊어진 우리 사랑 쟁쟁쟁 흘러가네 그윽한 산그림자 어질머리 뒤로 하고 무르익은 우리 사랑 아득히 흘러가네 그 위에 황하가 서로 흘러 들어와 서쪽 곤륜산맥 열어 놓으니, 만리에 용솟는 물보라 동쪽 금강산맥 천봉을 우러르네.

 

1990년 제4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중에서

 

 


 

고정희【高靜熙, 1948 ~ 1991. 6. 9】 시인

1948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 한국신학대학 졸업. 1975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 교수 잡지사 기자 등을 거쳐 『또 하나의 문화』 창간 동인,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역임. 1991년 6월 지리산에서 실족사로 요절.  '목요시' 동인으로 오월 시인으로 활동.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이 시대의 아벨』(1983), 『눈물꽃』(1986),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광주의 눈물비』(1990), 『여성 해방 출사표』(1990), 『아름다운 사람 하나』(1991) 등의 시집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