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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시인 / 어떤 날의 사과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했던 날을 기억한다. 희고 차고 어두운 허공을, 희고 차고 어두운 그 무한의 방을. 나는 하나의 음정을 무한히 반복했다. 드물게 분명했던 어느 날. 공원과 의자와 잔디는 얼어붙고 핵심은 내내 침묵하던 어떤 날.
떨어진 사과를 바라보던 나날들 사과처럼 둘이 되는 나날들
무릎을 꿇은 건 실수가 아니었다. 말을 찾을 시간이 필요했을 뿐. 혀를 놀리는 법을 알지 못했다. 웃지 않기 위해, 울지 않기 위해. 과장을 버리기 위해 버려진 과정들. 말이 될 수 없는 계단. 그 계단을 지난 적이 있다. 날아오르듯 떨어지고 떨어지는 심정으로 날아올랐다. 한순간의 고요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들. 기억은 내부가 되고 나는 바깥이 된다. 미안해요. 나는 나의 주름을 드러내며 말한다. 그러니 미안해요.
사과는 중력을 증명했고 중력은 시간을 증명했다
오래된 의자처럼 앉아 있다. 주어 없이도 길어지는 문장을 자르며. 숲에서 나온 새가 희고 차고 낮은 허공을 가른다. 눈이 온다. 눈이 올 것이다. 끝없이 갈라지는 길들이 사라진다. 그날의 공원 의자와 잔디가 드문드문 지워진 건 오래전의 일.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않았던 날들을 기억한다.
떨어진 사과를 바라본다 굴러가는 사과를 따라간다
웹진 『시인광장』 2015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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