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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주용 시인 / 붉은 수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3.

박주용 시인 / 붉은 수수

 

 

수수가 낮술을 기울여 붉다

 

붉은 것은 붉은 쪽으로 기울어 붉고 가을은 가을 쪽으로 기울어 붉다 바람에 여무는 수수도 경을 외는 스님처럼 합장하고 연신 허리 기울이는 것이어서 저절로 붉다

 

수수깡안경 쓰고 도수 없이 한 잔 기울여 보면 사는 게 뭐 별거냐며 하루해는 황소 불알로 축 늘어져 서산으로 붉고, 불알은 내게서도 잘그랑 잘그랑 실없이 붉다

 

기운 것은 모두 붉어 달도 허하게 붉다

 

시집 『점자, 그녀가 환하다』(시산맥, 2016) 중에서

 

 


 

 

박주용 시인 / 쌍둥이 별자리

 

 

발끈, 우주가 뒤꿈치 들었다 놓는다

 

벽지 타고 오르던 꽃들도 귀 쫑긋 세우고 위층에서 들려오는 신발 문수 가늠해 본다 깊어지는 시간만큼 자라나는 소리, 천정에는 하모니를 이루며 별들이 돋아난다

 

불 끄고 방바닥에 누워 밤하늘에 귀 기울여 보면 아장아장 터치 하나로도 별 쏟아내는 아이들, 오늘은 오른쪽 뺨에 점 발랄한 하느님이 젓가락 행진곡을 리드하고 있다

 

눈 감아야 서로 밝아지는 것들, 시간이 우묵하게 파인 자리에서도 층층이 꽃 밀어 올린 흔적 있어 아파트 벽에 그려진 감자 꽃은 아이 궁둥이처럼 환하다

 

꽃 피는 소리가 왈츠로 흐르는 밤, 천정에는 하느님들로 별자리가 돋고 있다

 

시집 『점자, 그녀가 환하다』(시산맥, 2016) 중에서

 

 


 

박주용 시인

충북 옥천에서 출생. 충남대와 건양대 대학원 졸업. 2014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점자, 그녀가 환하다』(시산맥, 2016)가 있음. 현재 화요문학 동인, 시산맥 특별회원, 건양대학교병설건양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