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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정옥 시인 / 상한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9.

안정옥 시인 / 상한달

 

 

  달이 내려다 볼 때 만 주차장은

  누런 한 장의 담요

  띠엄띠엄 어둠 속 차들은 나무와 맞닥뜨려있다

  달은 내 머리 위쪽을 벗어나

  비스듬히 내려다보고

  나도 몇 분 처연하게 올려다본다

  이 눈 떨림의 수 없는 기억 위에 나는 서있는 듯하다

  서로의 생각 속이다

  달이 시커먼 구름 속으로 들어서고

  나도 집안으로 들어서는 이 멀고 먼 행적

  달과 나의 균형이다

  집 안 깊숙이 기울수록 내가 쓴 詩들이 요동이다

  균형을 깨뜨려야 하는 시소처럼

  저쪽으로 기울면 이쪽이

  이쪽을 억누르면 저쪽이 한없이 가엾다

  숲으로 들어서는 것도 꽃에게 억지로 몸을

  디미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들이 있어야 되고 그들에게서 멀어지기 싫다

  무수한 일 중에서 상하기 쉬운 이 일,

  달 아래서 이렇게 치근거린다 해도

  오래오래 펜을 잡아야 할 손만은 거두지 마라

  묵인해주는 달이 있어 이만큼 견딘다

  나의 달빛, 오래도록 의심 없이 당겨라

 

계간 『포엠포엠』 2018년 봄호 발표

 

 


 

 

안정옥 시인 / 갈 수 없는 곳과 엉겨붙다

 

 

  늦은 밤 사거리에선 매번, 거의, 빨간 신호등에 걸렸다

  멈춰 있을 동안 이 생각에 들렸고 저 생각에 들렸다

  왼쪽으로 버드나무 하나 마음 없이 흐늘거린다

  그 사이로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내려다보인다

  다리 난간의 흐릿한 불빛들이 강물 위로 쏟아져

  무수한 별들과 엉겨붙어 있었다 엉겨붙음을 보다가

  걸어갈 수 있는 길로 급히 걸어가보기로 한다

  채 다리 아래 별빛에 도달하기 전에 출발이다

  며칠 지나 다시 그 자리에 멈췄을 때 꼭 거기까지다

  내가 갈 수 있는 곳 접근하려는 내 마음과

  강력히 막으려는 신호등의 지시

  가장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는 빛

  도발과 금지도 포함되어 있건만 그 빛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얼마나 손대고 싶어했던가

  어느 나무에게는 다른 나무의 가지를 잘라 눈접을 붙여

  하나로 엉겨붙게도 만든다 그들이 왜 그래야 되는지를

  나는 모르겠다 빨간 불빛에 잡혀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알맞은 이 비유,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집에 들어서면 나무의 가지들이 하나로 엉겨붙어 있는,

  내가 힘들게 접목한 수많은 그런 현상들과 일일이 대꾸하고

  흘깃거리며 소파에 앉는다 수십 가구점을 돌다 나의 눈에

  엉겨붙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내 손에 엉겨붙은

  리모컨을 누른다 다시 엉겨붙을 세상을 찾아 기웃거린다

  이제 지친 몸을 눕히면 온갖 것들이 잠들기 전까지

  나와 엉겨붙으려고 왔다가 가고 다시 왔다 돌아간다

  그러다 깊은 어둠이 솜이불처럼 나를 덮어준다

  몇 번이나 뒤척이는 나에게 걱정은 그만하라고

  한번 더 달빛과 엉겨붙게 해준다 이제 무언가

  못마땅함을 가진 나무에게 다른 나무의 가지를 붙여

  조금 더 씩씩한 나무를 만들려는 이의 속내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년간 『화요문학』 2017년  발표

 

 


 

안정옥 시인

서울에서 출생. 199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1993)와 『나는 독을 가졌네』(1995), 『웃는 산』(1999), 『아마도』(2009)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