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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원 시인 / 비밀의 방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9.

조원 시인 / 비밀의 방

 

 

  사각의 벽이 없다면 우리는

  벌써 개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원시의 동굴에서는 아버지와 딸,

  누이와 동생

  어머니와 삼촌이 알몸을 껴안고

  개처럼 잠들었을지도 몰라

 

  다행히 누군가 모서리를 세우고

  벽지를 두르고 커튼을 쳐서

  우리의 사생활은 보호받게 되었다

 

  벽은 짐승과 인간을 구분 짓는 경계선

  우리는 검은 털옷을 벗고

  사각지대를 달려가는 종족

 

  야성의 시간을 포효하며

  개가 되지 않고 개처럼 뒹굴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이곳은 외부인이 없으므로

  서로가 절실한 내부인

 

  황홀경에 빠진 별 하나 만나기 위해

  핥고, 할퀴고, 물어뜯고, 비비며

  고독한 음부를 헤엄쳐 간다.

 

  절벽 끝에 서서 털을 말리는 늑대여

  탄성만 지르던 모음의 귀두여

  아무 일 없다는 듯 우리는

  곧 자음을 엮어 명확하게 발음할 것이다

  빌딩 안으로 걸어 들어가 회의록을 작성하고

  내일의 물량을 점검할 것이다

 

  벽 안에서 벌인 모든 접촉은

  야성의 사랑이 나누었던 내밀한 각도

  이것이 개와 개인의 차이

 

계간 『시와 사상』 2016년 여름호 발표

 

 


 

조원 시인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슬픈 레미콘』(푸른사상, 2016)이 있음. 현재 <잡어>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