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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영춘 시인 / 와디(wadi)의 바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9.

이영춘 시인 / 와디(wadi)의 바람

 

 

어느 사막에 몸 눕혀야 할까 숨 쉬는 순간마다 목 조이는 바람, 바람의 사슬, 사슬의 길이만큼 내가 온 길은 지워지고 길을 잃는다 불 꺼진 벌판, 잃어버린 한 쪽 다리는 어둠을 켜듯 아득히 허공에 걸려 있다 허공과 허공 사이에 끼인 내 몸은 점점이 얼음 조각이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면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숨 쉬는 계곡마다 바람이 인다 바람에 갇힌 눈 먼 산새 한 마리 대낮 한복판에 누워 허공을 밟고 간다 내가 나를 찾지 못한 바람의 바퀴, 그 어둠의 바퀴들이 내 심장을 밟고 간다 내가 없다 없는 나를 데리고 사막을 건너간다 사막의 한 중심에서 흰 발목 하나 보인다 하늘에 걸려 있는 발 하나 암호처럼 환상처럼 별들을 지우고 간다

 

계간 『시작』 2014년 겨울호 발표

 

 


 

 

이영춘 시인 / 보도블록을 밀고오는구름꽃

 

 

  꽃잎처럼 툭툭 떨어지는 이름들

  복숭아 꽃잎만큼이나 햇살 밝은 대낮에

  K도 달려오고 Y도 달려오고 X도 달려오고

 

  숨죽이고 엎드려 있는 보도블럭의 맨발

  네 거리 사각의 길모퉁이에서

  피카소 안경을 걸친 피카소 안경점에서

  떨어진 구름 조각들을 줍고

  잃어버린 시간들을 주워

  안경 속 시신경들이 기억의 시간에 불을 붙여 들고

  달려오는 이름들

 

  손수건에 싼 이름들을 포켓에서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시간에 섞어 버무리고 있을 때

  흩어진 구름 조각들이 알몸으로 보도블럭에 툭툭 떨어지듯

 

  K도 가고 Y도 가고 X도 가고

  내 그림자마저 빠르게 뛰어가는 이 봄날

 

계간 『시와 사람』 2015년 여름호 발표

 

 


 

 

 이영춘 시인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197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시시포스의 돌』, 『시간의 옆구리』 外 8권과 시선집 『들풀』그리고 수필집 『그래도 사랑이여!』가 있음. 제3회윤동주문학상(한국문인협회)과 경희문학상, 강원도문화상, 대한민국향토문학상,

  2009년 제8회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한국시인작가회의.문학아카데미), 2014년 제9회 동곡문화예술상, 2015년 제12회 고산문학대상, 2015년 제6회 한국여성문학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