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춘 시인 / 와디(wadi)의 바람
어느 사막에 몸 눕혀야 할까 숨 쉬는 순간마다 목 조이는 바람, 바람의 사슬, 사슬의 길이만큼 내가 온 길은 지워지고 길을 잃는다 불 꺼진 벌판, 잃어버린 한 쪽 다리는 어둠을 켜듯 아득히 허공에 걸려 있다 허공과 허공 사이에 끼인 내 몸은 점점이 얼음 조각이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면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숨 쉬는 계곡마다 바람이 인다 바람에 갇힌 눈 먼 산새 한 마리 대낮 한복판에 누워 허공을 밟고 간다 내가 나를 찾지 못한 바람의 바퀴, 그 어둠의 바퀴들이 내 심장을 밟고 간다 내가 없다 없는 나를 데리고 사막을 건너간다 사막의 한 중심에서 흰 발목 하나 보인다 하늘에 걸려 있는 발 하나 암호처럼 환상처럼 별들을 지우고 간다
계간 『시작』 2014년 겨울호 발표
이영춘 시인 / 보도블록을 밀고오는구름꽃
꽃잎처럼 툭툭 떨어지는 이름들 복숭아 꽃잎만큼이나 햇살 밝은 대낮에 K도 달려오고 Y도 달려오고 X도 달려오고
숨죽이고 엎드려 있는 보도블럭의 맨발 네 거리 사각의 길모퉁이에서 피카소 안경을 걸친 피카소 안경점에서 떨어진 구름 조각들을 줍고 잃어버린 시간들을 주워 안경 속 시신경들이 기억의 시간에 불을 붙여 들고 달려오는 이름들
손수건에 싼 이름들을 포켓에서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시간에 섞어 버무리고 있을 때 흩어진 구름 조각들이 알몸으로 보도블럭에 툭툭 떨어지듯
K도 가고 Y도 가고 X도 가고 내 그림자마저 빠르게 뛰어가는 이 봄날
계간 『시와 사람』 2015년 여름호 발표
|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경숙 시인 / 菊花池* 외 1편 (0) | 2019.06.19 |
|---|---|
| 장요원 시인 / 줄넘기 하는 여자 외 1편 (0) | 2019.06.19 |
| 김은우 시인 / 물고기의 진화 외 1편 (0) | 2019.06.19 |
| 조원 시인 / 비밀의 방 (0) | 2019.06.19 |
| 안정옥 시인 / 상한달 외 1편 (0) | 2019.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