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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숙 시인 / 菊花池*
화선지에 살짝 낚싯대를 드리워 농담(濃淡)을 조절해보세요 저녁이 느리게 번져와요 바람이 대숲을 건드려 붓질을 하면 한 송이 국화로 피는 수상좌대 목뼈가 저리도록 물속에 코를 빠뜨리고 있는 저 남자
먹물방울로 맺힙니다 고개 돌려 술 한 잔 건넬 벗 하나 없는 저녁, 고인 저수지의 울음은 슬픈 여자를 닮았어요 국화꽃잎 하나씩 떼어내 물에 떨궈요 갈기갈기 부숴지는 물을 보세요 물고기로 化한 꽃잎의 기억들이 요동치네요 조사(釣師)들은 원래 곁눈질을 안 하지만 수작 부리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저 남자, 월척은 그른 것 같네요 어둠이 저수지에 덧칠을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녀와 동침하는 꽃방엔 국화향 가득 물안개로 피어오르는걸요.
*국화지: 강화도 강화읍 국화리에 있는 저수지
반년간 『시산맥』 2009년 창간(상반기)호 발표
고경숙 시인 / 보티첼리를 읽는 밤 -Venus-
틀어진 각도로 서있는 그녀는 금세라도 넘어질 것처럼 위태롭다
서풍의 신, 새벽의 신이 서녘을 향해 힘껏 바람을 불어댄다 붉은 긴 머리로 아슬아슬하게 그곳을 가린 그녀 오래된 서사가 소외되어 있다
적어도 붉은 장미로 치장한 침대는 아니더라도 나른한 바람을 덧입히며 기대했던 그녀의 표정은 행복에 즈음했어야 했다
공중을 향해 장미 한 다발을 던져라
새벽의 신이 다급히 외쳤다
비린 조개안에서 그녀의 맨발이 더듬더듬 무엇인가를 찾다가 급한 물살에 휘청거린다
비너스, 그녀의 시선이 서러운 나체를 못 따라가고 당신도 손을 내밀지 않았으므로 오늘은 그녀를 안을 수 없다
비대칭의 어깨에 내려앉은 혼탁한 어둠을 걷어내려고 밤이 헤프게 안료를 풀어댔다 시간차이를 두고 일어났던 그녀의 과거가 동일한 공간에 열거되고 돌아선 군주에게 보낼 편지를 들려 길 나서는 몸종따라
사랑, 관능 따위같은 하찮은 소재들이 몸을 들썩였다
계간 『시인정신』 2011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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