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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지우 시인 / 견본구두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8.

정지우 시인 / 견본구두

 

 

   발끝은 쏠려 있다.

   그렇게 뒷문을 여는 거울, 구두코가 시큰거리듯 빛났다.

 

   모르게 한 뼘씩 뒤꿈치가 들려있지.

   들어와서 나가는 사람이 같지 않다는 거울 속

   미리 걸어 보는 견본들

   앞을 넘겨보는 자세로 걷는데

   누가 땅을 바꿔 놓았나.*

   뒤가 끌어당겨 뒤통수를 바꿔놓자.

   의자가 가득 쌓인 문이 들어섰지.

 

   무늬에 감춘 오후 5시의 신발 속, 말일에서 도망친 발자국들

   주먹이 지나간 문처럼 숲에 버려진 눈동자처럼

 

   불안을 떠돌던 족적에 대해

   산책을 원한다면 먼 곳에 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

   넣는 순간 빠져나오지도 못한 곳

 

   원래 뒷걸음질은 거울에서 생겨났지.

   마지막 방향을 벗겨내자.

   아킬레스처럼 철문이 비명을 비틀어 쪽문을 만들어냈지.

   사람이 없으면 의자는 더 이상 의자가 아니다.

   공원은 공원이 아니다.

   거울 속에 들어가

   무더기로 멈춘 발에서 내 발을 찾아

   뒤를 돌아보았지.

 

   거울이 닫히고 있었지.

 

   닳아 없어진 발로

   간신히 나왔는데 너는 누구니?

   누가 내일을 바꿔 놓았나.

 

* 헤르타 밀러의 숨그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5월호 발표

 

 


 

정지우(鄭誌友) 시인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민음사, 2018)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