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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시인 / 그리운 몽타주
때로는 지나간, 지나간, 지나간 시간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모두 죽어버렸어 그런데도, 그런데도 지울 수가, 잊을 수가 없어 노래하는, 노래하는, 노래하는 파랑새의 날개보다도 더 가볍고 더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휘파람, 휘파람 소리 매일매일 새로운 유혹과 매혹이 꽃처럼 번갈아 피어나고 비가 내려, 비가 내려, 비가 내려 쏟아지는 빗물에 뜨거운, 뜨거운 열정과 갈망을 식히던 살과 피와 혼이 한데 어울려 끝없이, 끝없이 굴러가던 왕도 없고, 신하도 없고, 하얗게 내리쬐던 태양, 태양뿐이던 그때가 그리워, 못 견디게 그리워 집에서 너무 멀리 나와 집이, 집이, 집이 보이지 않아도 한밤중에 악몽으로 깨어나 새카만 공포가 유리창을 흔들어도 부잣집 소년이 빌려준 책, 책, 책들 속에 온 마음을 빼앗겨도 더 멀리, 아주 멀리로 떠나고, 떠나고 싶어 배고픔도 참고, 외로움도 참고, 사람들도 참고, 이 세상도 참았던 앞으로 가도 상처, 뒤로 가도 상처, 옆으로 가도 상처뿐이어도 그 상처에 침을 뱉고, 그 상처를 축복하며, 그 상처를 붙안고 끝까지 나를 잡아당기는 그 길, 길, 길들을 계속 따라 갔지 벚나무, 산사나무, 너도밤나무, 느릅나무를 흔드는 시원한 바람처럼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올라타 가방도 없이, 가방도 없이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처럼, 식을 줄 모르는 애절한 사랑들처럼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지금은 모두 잿더미, 잿더미, 잿더미 지나간 날들 속에 깊이, 깊이, 깊이 가라앉고 숨어버린 가슴이 천 개이면서도 또 하나도 없는 여자, 그리운 몽타주
웹진 『시인광장』 2018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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