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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하우림 시인 / 프라하 엽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1.

하우림 시인 / 프라하 엽서

 

 

카프카씨!

 지상의 가장 쓸쓸한 십일월 ‘프라하는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며 평생 프라하를 떠난 적이 없는 당신의 城(성)에 마침내 당도했어요

 

애달픔에 가까운 금기처럼 깊은 농밀함, 유랑의 중세라고 확연히 쓰겠어요

 

 ‘k가 도착한 것은 깊은 밤이었다’로 시작되는 城을 떠올리자면 금세 어둠과 안개의 서늘한 공기가 몸살에 시달리듯 나를 몰아세워 아득히 그곳을 그립게 했던 오래된 프라하 적요한 비의 냄새

 

몰다우강의 물살위에 어른대는 푸른 불빛의 파문, 까를교의 반들반들 닳아진 돌바닥 난간에, 전차에서 내린 쾡한 당신이 약혼과 파혼을 네 번씩이나 반복한 병적 우울을 떨치려 홀로 서성대던, 그 날의 혼곤함이 허기진 내 영혼의 뺨을 후려치며 가네요

 

당신은 요절했고, 나는 이 중세풍 도시의 다리위에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아코디언 선율에 코를 박고 쿨적쿨적 울고 싶네요

 

일련의, 당신과 나의 고독에 대해 심금을 나눠 갖고 싶어서 너무 늦게 도착한 내 늙은 엽서를 몇 자 쓰는 거지요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프라하에 안개비는 하염없고 나는 중세의 붉은 지붕 아래 빈 방에 꼼짝없이 갇혔습니다 이렇게 잉여의 중세 여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속절없이 간절히!

 

시집 『오래, 오래란 말』(지혜, 2015년) 중에서

 

 


 

 

하우림 시인 / 시인 최승자

 

 

  내가 살아있다는 건 ‘루머’라고 쓴 시인

  정신분열증과 11년 만에 시집을 낸 시인

  3평짜리 고시원을 전전하는 기초생활수급자

  놀라운 당신의 안부는 폐부를 찌르듯이 아팠다

 

  홀로 모질게 생의 욕망을 방치한 당신

  나를 극한까지 몰아 부치는 정신적 토양이

  건조하게 드러나 물기가 없고 황량한데

  당신은 조망할 수 없는 차원의 세계를 탐색

  하며 깊은 영혼의 자상(自傷)으로 앓고 있었다

  오래 된 꽃의 도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쓰레기더미 위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는

  늙은 걸인 여인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그녀는 나의 방랑하는 처지를 한심해하며

  비웃는 그런 딱한 눈빛으로 서로 연민했다

 

  당신의 문제는 몸을 저버린 정신의 과잉이라고

  인터뷰 기사는 단정해 버렸다

  흘러가지 않는 저 세월은 내게 똥이나 먹이면서

  나를 무자비하게 살려둔다고

  비탄어린 시구로 절규했지만, 눈은 맑았다

  이렇게 마음이 구석에 멋대로 처박히는 날

  당신처럼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뜬소문 같다

 

시집 『오래, 오래란 말』(지혜, 2015년) 중에서

 

 


 

하우림 시인

경기도 이천에서 출생. 장편소설 『바람을 타는 여자』(청산출판사, 1994)와 시집 『전화 속에서 울고 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그대』(한국미디어, 1995)를 출간하며 등단. 시집 『오래, 오래란 말』(지혜, 2015년) 출간. 현재 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