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효림 시인 / 명랑한 소풍
잠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머리카락 끝에 누워 있는 잠 구두는 깜박 졸고 열려있는 귀를 민다 별이 내릴 동안 하늘은 계단 아래 허리를 구부리고
죽어서 어여쁜 과거, 지문 없이 잘 썩은 꽃향기. 들판에 지천으로 핀 엄마, 엄마는 젊고 동생은 언제나 작고 나비 날고 나는 어여쁘고 앞집에는 네가 살고 있다 잠을 열면 레일을 벗어난 철학이 더 달콤하여 장미는 흑백이며 서민적이며 새들은 목구멍에서 내일내일 뿌리를 내린다 비들은 계속 알을 까고 쥐들이 햇살을 갉아 대는 첫 번째 주말은 유토피아를 사러 간다 개가 큰소리로 짖으며 산들은 몇 개 더 골목을 만들고 양지를 골라 코미디를 심는다 딸랑거리며 깡통 찬 고래가 밀림을 걸어간다
시집 『명랑한 소풍』(북인, 2014) 중에서
이효림 시인 / 로드맵
손금을 짚어 나갔다 조금 더 앞으로, 내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출발지는 많이 훼손 되었을 거야 많은 사람들 숲에 갇혀 죽어 갔을 것이고 숲속에 떨어진 주소는 복통의 흔적처럼 실금만 그렸다 자갈처럼 짖는 기침 가릉거리고 집터만 남은 손금에 죽은 친척들의 웃음만 떠돌았다 손가락에 걸린 나룻배는 예언서의 주문만 중얼거렸다 조상의 길머리는 뿌리가 엉켜 몽유로도 갈 수 없다고 점술가는 내손을 밀었다닫았다 뒷산만 두드렸다 무작정 집을 나온 지렁이들 종일 쑥속 같은 대지만 기어 다녔다
시집 『명랑한 소풍』(북인, 2014) 중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박은경 시인 / 도착(倒錯) 외 1편 (0) | 2019.07.01 |
|---|---|
| 최춘희 시인 / 바벨의 시간 외 1편 (0) | 2019.07.01 |
| 김서은 시인 / 하우스 푸어 외 1편 (0) | 2019.07.01 |
| 하우림 시인 / 프라하 엽서 외 1편 (0) | 2019.07.01 |
| 김상미 시인 / 그리운 몽타주 (0) | 2019.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