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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수빈 시인 / 안녕, 태양주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9.

박수빈 시인 / 안녕, 태양주의

 

 

이태원 거리는 어때요? 장날 아니고 동물원도 아닌데 신호등이 바뀌자 닭처럼 구시렁구시렁 되똥되똥 후다닥

 

무릎 나온 청바지에서 모래가 흘러내려요 오토바이의 동그라미 옆에 채송화가 징징대자 솜사탕이 몽실거리고 눈이 부신 당신 따위쯤이야 하면서 구름으로 된 의자에 앉아 어기야 둥둥

 

호랑이만한 저 건물은 욕망의 탑인가요 으르렁거리는 어깨 너머 담벼락이 보이지 않아 저기는 구구절절 꽃들이 꺾이는 곳

 

오직 하나인 당신을 등지고 제각각의 피부색과 말이 오가요 달리고픈 말의 갈기를 상상해 봅니다 바람을 가르는 이마 가득 이리 눕고 저리 눕는 풀 냄새

 

향료와 음식마저 제멋대로라서 제 맛 아닌가요 학교에서는 왜 자꾸 해바라기를 심고 보도는 블록인지, 악마의 입처럼 재단가위가 씨익, 큰옷 파는 가게들이 널려 있어요

 

나는 나귀의 혼종일지 몰라요 오늘도 터벅터벅 덫에 걸린 우리, 횡단보도에서도 금을 밟을까봐

 

미장원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같은 나

 

몇 번 출구라고요? 계절이 깊어가면서 뒷골목이 활기찬 여기는

 

계간 『열린시학』 2018년 봄호 발표

 

 


 

 

박수빈 시인 / 나는 누구의 입석인가

 

 

  저 덩치는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다

  안락의자에 푹 젖어 어느 꿈 속을 여행 중인가

  황금단추가 호랑이 눈처럼 반사가 된다

  팔짱을 끼고 얼룩진 시간을 접어버린다

  지퍼를 열면 안주머니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쪽지

  날개처럼 창 밖으로 날아갈 것 같다

  바지의 아랫단이 구두코를 덮고 먼지를 덮고 바닥을 덮고

  기적 소리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공기가 닿지 않는 폐부의 푸른 기차

  어느새 누구나 만나게 되는 늙은 기차

  달리고 달리는 세상

  주위를 돌아보니 저마다 코를 박고 있다

  입구가 출구인 비상구

  통로를 지나던 승무원이 객실을 향해 인사를 한다

  내게 어울리는 의자는 어느 칸에 있을까

  플라스틱 의자 접는 의자 흔들의자 바퀴의자 등받이 없는 의자 멀고 먼 소파

  얼비치는 전등이 무화과를 닮았다

  바람은 춤을 추고 무화되었을

  돌아갈 수 없는 기차

  헤어지기 좋은 기차

 

계간 『열린시학』 2018년 봄호 발표

 

 


 

박수빈 시인

전남 광주에서 출생. 2004년 시집 『달콤한 독』으로 작품 활동 시작,  《열린 시학》 평론 등단, . 저서로는 시집으로 『달콤한 독』,  『청동울음』과 평론집 『스프링 시학』, 『다양성의 시』이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이며 상명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