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미 시인 / 컵의 회화
한 번씩 스푼을 저으면 내 피가 돌고
그런 날, 안 보이는 테두리가 된다 토요일마다 투명한 동물로
씻어 엎으면 달의 이빨이 발등에 쏟아지고
난간을 따라 걷자 깊은 곳에서 녹색 방울이 튀어 오른다 살을 파고 모양을 그리면서
백지 위 젖은 발자국은 문고리가 된다
다른 몸으로 나갈 수 있겠다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양파 공동체』(민음사,2013) 중에서
손미 시인 / 책상
책상다리를 끌고 왔어 웅크리고 앉아 흰 과일을 빗질하는 밤 나무 책상과 내가 마주 본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잡아먹히게 될 거야 책상이 걸어 와 내 귀퉁이를 핥는다
그래, 이토록 그리웠던 맛 나를 읽는 책상 이빨 내 몸에서 과즙이 흘러 우리는 맨 몸으로 뒤엉킨다
네 위에 엎드리면 우리는 하나 또는 둘이었지
나무 책상과 내가 응시한다
딱딱한 다리를 끌고 우리는 같은 곳에서 온 것 같다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양파 공동체』(민음사,201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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