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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윤희 시인 / 剩餘人間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9.

조윤희 시인 / 剩餘人間

 

 

  내 꿈들이 매달려 있는

  내 몸은 무겁다

  언제부턴가

  내가 내 몸을 끌고 다닌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내 몸의 뼈가 더 이상 만져지지 않았을 때

  내 몸에 살이 붙고  

  불어난 나의 탄력 없는 살이

  비곗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 앞에서

  새삼스럽게 서글퍼지는 것은

  그것이 대책 없이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그 미끈거리는 삶의 손아귀에서

  자꾸만 빠져나가려 하는

  현실감 없는 내 육체가

  아직도 땅을 밟고 서 있어야 한다는

  직립해야 한다는

  그 치욕

  그 치욕의 무게는 의외로 근이 많이 나간다는

 

시집 『모서리의 사랑』(세계사, 1999) 중에서

 

 


 

 

조윤희 시인 / 슬픈 모서리

 

 

타락천사 1

 

* 헤맬수록 왠지 나는 더욱더 쓸쓸하던 것이다

계집 하나 잘못 잡아먹고 목에 비녀가 걸린 채

고옥이 배회하는 그런 어떤 야윈 들개처럼

왠지 내 목구멍에도 그런 비녀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었을까도 모른다

- 박상륭-

 

  비가 오는 날 나는 들개다

  비루먹은 들개다

  진창에 온 털을 적시고

  물웅덩이에 비친 자기 몰골을

  타인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웅덩이의 하늘을

  마치 明鏡처럼 들여다보며

  흙 속에 묻힌 수백 년의

  세월을 닦아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목에 걸린 비녀를 우는

  비(雨)녀(女)다

  찌그러진 밥그릇에 담긴

  자기 뼈를

  핥아대고 있는,

  조 윤 희

 

타락천사 2

 

혼 위에 뼈며 살을 입고 있다는 것은

무겁고 거추장스러우나 그래도 그 탓에

혼은 좀 덜 추운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좁은 자는 자기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언제나 자기와 다른 것으로 보며 마음을

더욱더 오그려 쌓아 더욱더 좁은 것으로

만들려 한다

-박상륭-

 

  온 들판을 흔들며 지나가는

  들소들,

  떼,떼,떼들,

  그 들소 발굽 아래

  자지러지는

  개미

  조 윤 희

 

타락천사 3

 

자기의 체신보다도 두 배도 더 큰 것을 그

체신 속에 넣어두고도 살쪄보이는 구석이

라곤 없는 늙으네는 더욱더 지쳐보였다

하기는 여러 곳에서 나는 삼천대천세계를 다

삼키고도 배가 고파 허리가 휘인 그런

늙은네들을 많이도 보아온 터이긴 했다

-박상륭-

 

  들소떼들의 발굽 소리를 넣어두고도

  잘록한 개미허리로

  두 개의 세상을

  만들어버리는 習性,

  입과 항문 사이가 막혀

  창자 속에서

  독이 되는 똥

  조 윤 희

 

타락천사 4

 

장소로부터 도망치며 어쩔 수 없이 장소로

드는 죽음, 습속으로부터 계속하여 떠나가며

그 습속 속에서 죽는 죽음, 스승의 어휘로는

계집으로부터 도피해가며 계집의 자궁으로

드는 죽음, 이런 병인은 진맥키 어려운 듯하다

- 박상륭-

 

  자신 속의 幻滅은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

  자기가 자기 내장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가

  다시 토악질하는

  바다

  조 윤 희

 

*박상륭의 소설 “죽음의 한 硏究”에서 부분 발췌

 

시집 『모서리의 사랑』(세계사, 1999) 중에서

 

 


 

조윤희 시인

전남 장흥에서 출생.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모서리의 사랑』과 『얼룩무늬 저 여자』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