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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우희숙 시인 / 도시의 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9.

우희숙 시인 / 도시의 쥐

 

 

  새벽녘이면 쥐가 들어온다

  시골집 천정은 늘 쥐 오줌으로 얼룩져 있었다

  소리 없이 잠입하려해도 부실한 천정은

  그들의 말발굽 같은 발소리를 감춰주지 못했다

  숨죽이며 경직된 몸이 그걸 기억하나

  종아리 근육이 오그라들며 새벽 단잠을 깨운다

  쥐들이

  스트레스와 피곤에 찌든

  낡은 근육 속을 돌아다닌다

  벌어진 근육은 틈새를 쉬 좁혀주지 않는다

  쥐를 잡으려 종아리를 힘껏 주무른다

  울뚝불뚝 틈새를 누비며 도망치는 쥐들은 쉬 잡히지 않는다

  힘든 육체만 골라 새벽잠을 깨우는 쥐들근육의 살점을 뜯어 먹는다

  한 입 물어뜯길 때마다 악! 하고 벌떡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들이 배불리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허기를 채운 쥐가 잠적하고 근육은 종일 아프다

 

시집 『도시의 쥐』(문학․선, 2012) 중에서

 

 


 

 

우희숙 시인 / 부검의(剖檢醫)의 저녁

 

 

  한 여름,

  불볕의 노상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그녀

  사타구니 가득 구더기들이 고물고물 자라고 있다

  밤낮없이 일해 마련한 17평 연립주택

  입주 계약서에 담보로 잡힌

  만기를 훌쩍 뛰어 넘은 자궁암 말기

  무너질 듯 꽉 들어찬 화농을 구더기에게 먹이며

  죽음은 그렇게 뜨거운 밥 한 공기처럼

  부풀어 올라있다

 

  부검대 위로 들어 올리자

  홀로 쓸쓸했을 밤마다 뿌렸을 싸락눈처럼

  비릿한 구더기들이

  오르르오르르 떨어져 내린다

  아직 남아 있는 속살,

  그 찌꺼기까지 힘차게 베어 물고

  저보다 큰 어둠 한 주먹 거머쥔 채

  한 겨울밤 폭설처럼 쏟아진다

 

  벌어진 사타구니가 휑하다

  성기도 자궁도 나팔관도 방광도 암세포도 없다

  다만, 그녀가

  웅크리고 걸음 걸어 막 닿았을

  막장의 엉덩이 요추 끝에

  텅 빈 17평 연립주택 한 채를 들여 놓았다

  그녀는 없고, 부검실 무영등만이

  밤새 환하게 도배질 하고 있다

 

시집 『도시의 쥐』(문학․선, 2012) 중에서

 

 


 

우희숙 시인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10년《문학․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도시의 쥐』(문학․선, 2012)가 있음. 현재 『문학․선』주간, 삼성서울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