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란 시인 / 尺
다리를 尺 걸치고
어디다 발길질이니
긴 회랑을 다 못 지나고 햇빛이 쓰러졌다
회랑 바닥에 흩어진 햇빛의 옷깃이 하얀 먼지처럼 펄럭인다
바다에 빚졌으니 모두 바다를 잊어선 안 돼
회랑 바깥 멀리에선 파도가 몰아쳤다
해변엔 퉁퉁 불은 보름달이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바다와 밀담을 나누다 바다에 몸을 던진 것
바다에 거대한 폭풍우가 일었으나 달을 대신할 인력이 곧 나타나
머뭇거리던 어선들은 눈치 볼 여지도 없이 출항을 서두른다
햇빛의 옷깃은 회랑 기둥에 굵은소금으로 말라붙었다
눈시울이 따가운 건, 벚꽃염을 밟고 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때문
격월간 『시사사』 2016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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