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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정란 시인 / 尺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3.

이정란 시인 / 尺

 

 

  다리를 尺 걸치고

 

  어디다 발길질이니

 

  긴 회랑을 다 못 지나고 햇빛이 쓰러졌다

 

  회랑 바닥에 흩어진 햇빛의 옷깃이 하얀 먼지처럼 펄럭인다

 

  바다에 빚졌으니 모두 바다를 잊어선 안 돼

 

  회랑 바깥 멀리에선 파도가 몰아쳤다

 

  해변엔 퉁퉁 불은 보름달이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바다와 밀담을 나누다 바다에 몸을 던진 것

 

  바다에 거대한 폭풍우가 일었으나

  달을 대신할 인력이 곧 나타나

 

  머뭇거리던 어선들은 눈치 볼 여지도 없이 출항을 서두른다

 

  햇빛의 옷깃은 회랑 기둥에 굵은소금으로 말라붙었다

 

  눈시울이 따가운 건, 벚꽃염을 밟고 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때문

 

격월간 『시사사』 2016년 1~2월호 발표

 

 


 

이정란 시인

1999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나무의 기억력』, 『눈사람 라라』가 있음. 계간 《詩로 여는 세상》 부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