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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차애 시인 / 먼지經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3.

안차애 시인 / 먼지經

 

ㅡ먼지가 없으면

ㅡ푸른 하늘도 없고

ㅡ연잎 위로 구르는 물방울의 표면장력도 없으리

 

 

   TV화면 속은 온통 진폐의 꽃밭이다

   미세혈관에서 우주 속까지 닿는 허공마다 온통 먼지의 춤이다

   벽과 선을 지워 소울 풀한 웨이브다

   기억과 추억을 헐어 만든 리듬의 풍경이다

 

   2.5마이크로의 먼지 입자 몇 몇 개가 산수유 이파리의 기공 속으로 들어갔다

   당신의 한숨으로 나오는 사이

   짬뽕라면 면발의 틈을 벗어난 몇 알갱이는 구름 꽃을 꿈꾸며 날아오른다

 

   46억만년 전 먼지 알갱이 몇몇이 빙글빙글 춤추던 자리가 우리은하의 시작이었듯

   내가 스무 살에 경험한 최루탄 먼지 속 산란이 우리의 꽃밭이었나

   우리를 둘러싼 먼지의 파장 먼지의 온도 먼지의 색깔 먼지의 냄새들이

   스프처럼 끓어올라 오늘의 웸홀을 빠져나왔나

   왠지 익숙한 사람들은 같은 별의 먼지를 많이 공유한 사람들이라는데

   내 먼지들은 기댈 좌표가 없어서 당신의 어깨에 내려앉았나

 

   내가 먼지의 밥을 먹고 먼지의 돈을 세고 먼지의 침대 속을 드나들며

   빵가루 같은 각질을 뱉는 사이

   착란의 오로라는 피어오른다

   깜빡 속고 싶은 무브먼트 반짝반짝,

   점묘풍의 춤과 리듬 사이로 한 생의 꽃잎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계간 『시현실』 2018년 봄호 발표

 

 


 

 

안차애 시인 / 얼룩무늬라는 바코드

 

 

  사바나를 롱 샷으로 찍는 초점의 중심에 얼룩말 무늬가 펄럭입니다

 

  달리는 건 아니고?

  청소기를 들고 지나치다 다시 화면 앞으로 되돌아옵니다

  탱탱한 근육을 모델 자세로 뽐내며 서있는 거 아니고?

  더 클로즈업되길 잠시 기다립니다

 

  오오,

  끄덕이고 흔들리고 젖혀지고 마침내 계산대에 오른

  한 바구니 쇼핑 목록

  사바나의 저녁 식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산뜻한 속도와 깔끔한 흑백대비가 싱싱한 맛으로 전이되는 중인지

  바코드의 신선도는 깔끔하게 유지됩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중에도 희고 검은 건반은 리드미컬하게 울려

  사바나 암사자의 식탁 주위를 풍성하게 밝힙니다

 

  목숨 이후에도 뻗쳐오르는 코나투스의 향연인가요?

  탄탄한 암사자의 잔등이 되기 직전의 손 흔드는 작별인사인가요?

  어두운 밤과 투명한 아침의 기분으로 돌아가는 웅얼거림과 웃음소리

  길거나 짧게, 희거나 검게 들썩입니다

 

  얼룩무늬는 달리고 달려서

  여기까지 계산됩니다

  얼룩무늬는 미끈, 미끈하게 탱탱해서

  지금의 맛으로 완료됩니다

 

  얼룩무늬는 스트라이프,

 

  다시 이진법으로 빠르게 업로드 되는 중입니다

 

계간 『모:든시』 2018년 봄호 발표

 

 


 

안차애 시인

1960년 부산에서 출생. 부산교육대학 졸업.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문예진흥기금 및 경기문화재단기금 등을 수혜하여 시집『치명적 그늘』, 『불꽃나무 한 그루』 등을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