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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화순 시인 / 자월도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2.

김화순 시인 / 자월도

 

 

방아머리 선착장을 떠나자 풍경은 허공을 홀치는 갈매기 떼에 포위 되었다 색색의 울음으로 바다와 하늘을 박음질하는 갈매기들 오늘이라는 퀼트를 제작 중이었다 그곳은 자색 달이 뜬다 했다 한눈에 들어오는 자월도는 구불텅한 해안선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물 빠진 펄에 쭈그려 앉아 조개 캐는 사람들 그들이 발굴한 시간은 곧 어제가 되었다 나는 펜션 그네에 앉아 출렁이는 기억을 구르며 자색 달을 기다렸다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티비*를 보며 나는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 싶었던 걸까 파도소리에 겹겹 스며든 어둠이 바다의 결을 들추고 달은 그 아래 잠겨 제 몸을 조금씩 헐기 시작했다 무채색 하루가 보랏빛이 되기를 기다리던 밤 나를 잉태한 시간들 조금씩 물들었다 잊었던 이름을 떠올리자 이내 차오르던 색색의 그리움 자월도 다녀온 후로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은 모두 자색으로 함축되었다

 

* “달은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티비다”라는 백남준의 말에서 차용

 

웹진 『시인광장』 2018년 3월호 발표

 

 


 

김화순 시인

서울에서 출생. 2004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고려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시집으로 『사랑은 바닥을 쳤다』, 『사랑은 바닥을 쳤다』 등과 그저서로 <<김종삼 시 연구>>가 있음. 현재 고려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