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율 시인 / 환영인사 ㅡ공기
의자 위에 앉은 공기는 지루하지만 앞으로 뒤로 인사를 나누면 항상 반가워져
하늘을 날고 있는 새를 누군가는 현기증이라고 말해 나는 참 오래 된 공기, 동생은 조금 무거워지고 있지만 잠깐씩은 가벼워지기도 하지
누군가의 머리카락은 검게 타고
누군가는 꼭꼭 숨어서 웃기도 하는
다정하고 재미있는 인사를 나누는 동안 어떤 공기들은 여러 번 죽었고, 불을 켜 놓은 채 집을 떠나기도 했어
내가 공기보다 더 다가가고 싶다고 하면 이제 어깨가 조금 넓어져도 괜찮다고 누군가 말하지
나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박수를 크게 쳤어 인사를 나누면 반가워지는 공기처럼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0년 9~10월호 발표
김지율 시인 / 내 이름은 구운몽
사람들은 나를 구운몽이라고 부릅니다 구운몽이라고 발음하면 왠지 귓속말처럼 느껴지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아직 오늘밤이잖아 발꿈치를 살짝 들고 얘기할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밤이었고 충분한 밤이었고 들판에 가득한 밤이었지 당신은 밤마다 젖은 구름으로 왔고 고양이 없는 웃음으로 왔고 때로는 눈보라 눈보라로 왔지 당신이 사과 하나를 들고 똑같이 나누자 갑자기 모든 것이 조용해 졌어 오늘 밤 나는 당신에게 해줄 이야기가 많지만 호주머니를 잃어서 슬퍼 라고만 할게
당신은 나를 구운몽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이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검은 보자기라고 발음한 것을 모른 척 했으면 좋겠어 오늘밤 구름 가까이 더 가까이서 당신의 등을 두드리며 왜 신발을 벗었니 라고만 할게 그러면 구름 속에 있는 복사씨와 살구씨는 어떤 마음일까
나는 나를 구운몽이라고 부릅니다 지구는 생각보다 빨리 돌아 금방 해가 저물어 엄마는 구름을 낳고 여전히 눈이 두 개, 귀가 두 개였던 걸 제일 기뻐했어 그럴 때 당신은 내 귀에 대고 말하겠지 귓속말 너머 귓속말 물고기 너머 물고기 구름 너머 구름 그리고 내 이름은 구운몽 당신에게 해 줄 이야기는 아직 많지만 커피엔 각설탕은 빼고 라고만 할게 우린 아직 아홉의 눈동자 아홉의 구름 그리고 아홉의 꿈이잖아
계간 『열린시학』 2010년 겨울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미영 시인 / 비열한 거리 외 1편 (0) | 2019.10.02 |
|---|---|
| 우원호 시인 / 黃砂 (0) | 2019.10.02 |
| 김화순 시인 / 자월도 (0) | 2019.10.02 |
| 마경덕 시인 / 마트료시카 (0) | 2019.10.02 |
| 강은교 시인 / 순례자(巡禮者)의 잠 (0) | 2019.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