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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연옥 시인 / 러닝머신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6.

이연옥 시인 / 러닝머신

 

 

트랙의 끝에서 하늘거리는 날개여,

그대로 날 잡아다오

 

의식 없이 집어 올린 부피

이것을 탑이라고 하자

덩어리와 덩어리로 이룬 층계

이제부터 타협이 시작 된다고 하자

연체이자처럼 늘어나는 탑을 부숴야한다면

 

달린다, 빠른 템포의 음악, 쉼 없이 돌아가는 트랙

잘 구워진 삼겹살 해물찜 장수막걸리들이 달린다

무방비로 달린다 의식이 무의식이 달린다

 

42.195를 앞에 둔 페이디피데스의 숨처럼

비표준이 표준치의 삶을 쫓아

달리는 중이다

 

스키니아스 해안의 물결같이

쓸어버릴 때까지 잔잔해지기까지

탑을 내려가는 사람들이 밟는 계단을 러닝머신이라고 하자

 

타협이 끝났다, 라고 하자

 

 


 

 

이연옥 시인 / 쓰르라미

 

 

  소리로 주문을 건다

  쓰~름. 길고 유연하게 공중에 떠오른다

  어디를 떠돌다 걸림돌이 되었을지 모를 소리들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음파를 따라 헤엄 쳐온다

  음 하나가 창밖 은행나무 가지에서 괴성을 낸다

  엊그제 버럭 질러버린 책망이 덫이다

 

  쓰~름~ 소리맵시엔 즐거운 파동이 있다

  음절 하나하나가 줄을 서는 버드나무 잎사귀 위

  첫새벽부터 시장은 성황을 이룬다

  여름내 떠들던 음표들이 어떻게 흥정되는지

  폭풍을 몰고 온 소리 땡볕에 목마른 소리 좌판을 흔드는 소리

 

  뇌세포를 누르는 쓰~름~ 쓰~름~

  저 진동의 폭; 아침부터 걸어온 주문

  불협화음이 부서져 내린다

 

계간 《예술가》 2010년 겨울호등단시

 

 


 

이연옥 시인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10년 ≪예술가≫ 겨울호 등단. 시집으로는『산풀향 내리면 이슬이 되고』(한강출판사, 1999),『연밭에 이는 바람』(월간문학, 2008),『 나비의 시간』(현대시학, 2016)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