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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서완 시인 / 달의 내력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11. 27.

강서완 시인 / 달의 내력

 

 

부엌으로 뒤뜰로 빨래터로, 아낙이 층층시하 허리를 쉴 새 없이 꺾고, 세 살 아기 아장아장 걸어가 우물가 양잿물을 삼키고, 그 밤 어둠을 삼킨 모음이 창자마다 들끓고, 소복소복 우물가로 걸어간 아낙은 우물 속에 탯줄을 내리고, 야리야리 여윈 달 건져 올려 덜컥 삼키고

 

그해 넘겨 느티나무에 피던 별들 만월에 빛을 잃고, 천지신명께 몸 덜어낸 아낙은 부엌 문고리를 걸고, 사락사락 항아리 가득 길어온 달빛이 달덩이를 씻고, 얼핏얼핏 비치는 달 구름 속을 내달리고, 그 달을 덥석 어둠이 베어 먹고

 

시든 꽃잎들 날리는 마당에 젖내 나는 이내 가만가만 들어차고, 아낙의 일그러진 입술을 누르는 어둠이 꿀꺽 달을 삼키고, 팽팽한 우주를 안으로 당기던 아낙의 붉은 꽃 뜨겁게 열리고, 화등잔만한 아낙의 두 눈, 으앙!

 

휘둥그레 달,

달이예요

 

 


 

 

강서완 시인 / 네 안에 든 바람이 꽃잎 속에 들었겠는가

 

 

  네 안에 들어서려고

  어제 흔들리던 바람이 오늘

  고요히 꽃잎 속에 들었겠는가

  오늘 네 안에서 울부짖는

  격랑의 물결이

  어제는 차분히 흘렀겠는가

   

  붉은 꽃송이 타오르는

  한 폭 그림으로

  네 안에 정물의 감옥이 되고 싶었다

  정한 가시에라도 찔려

  더운 피 흘리며

  저수지 깊은 곳 헤엄치다

  홀연히 잠들고 싶었다

   

  흔들려 서산 붉은 메아리가

  호수에 잠기는 나르시스,

  거울 속 피안이 바람의 등을 민다

  좌석버스들이 모여 서로 몸 붙이고

  노숙하는 차고지

  막차는 정차하지 않고

  빛바랜 언어들만 바람에 덜컹거린다

  그때마다 모자 쓴 가로등은 낯빛을 흐리고

  벽이 벽을 가로 막는다

    

  어제 흔들리던 바람이  

  뜨거운 오늘의 물결이

  구겨진 너의 내면에 차곡차곡 접혀

  어제 날린 꽃잎의 자모들이

  오늘은 바람 속에 들었겠는가

 

 


 

 

강서완 시인 / 4월

 

 

  왜 모든 가로등은 밤만 되면

  나신을 과시 하는가

  영산홍 철쭉 진달래를 죄다 얼굴 붉히게 만드는

  우라지게 뽀얀 저 젖통들,

  봄밤의 공기는 튀밥처럼 부풀고

  못내 울렁증을 참지 못한 향기들이

  앞가슴을 열어젖히면

  잠 못 드는 비둘기들

  취한 눈동자가 방자해 진다

  그 틈을 노려 옆집 삽살개가

  떠돌이 개를 따라

  울타리를 빠져나간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들들들 몸서리친다

  오늘 비로소 4월 가는데

  삽살개의 행방만이 궁금하다

 

  사방에 질퍽한 달, 먼데 계신 어머니도

  저 달 보시려나

  고향으로 달을 전송하려고 핸드폰을 열자

  저 홀로 덩그마니 화면에 달이 뜬다.

 

 


 

 

강서완 시인 / 그믐밤

 

 

  1

  쉿,

  바람이 가만히 들어서는 발자국 소리

  사그락 달이 문 닫는 소리

  나뭇잎 솔솔솔 몸 씻는 소리

  꽃잎이 사르륵 몸 사려 숨죽이는 소리

  조근조근 치밀하게 덮치는 그림자의 심장소리

  천지가 혼절하는 어둠 속

  소리

 

  2

  감지 마라

  눈 감지 마라

   

  꽃 지지 마라

  잎 놓지 마라

   

  달거리가 붉어봐야

  보름달 마냥 밝겠느냐

   

  감지 마라

  눈 감지 마라

   

  눈 감으면

  어둠이다.

 

 


 

 

강서완 시인 / 바다

 

 

  중심은 속 깊이 있다

  중심이 있는 것은 안으로 시공을 당긴다

  끌어당긴 햇빛으로 바람으로

  비로 안개로 속을 채운다

  배추는 알배기로 붉은 사과는

  검은 눈물 감춘 하얀 심장으로

  돌부처는 엷은 미소로

  사람은 붉은 심장만으로 채운다

  채우는 것들이 어디 부드럽기만 하겠는가

  부드러움 속에 폭염과 폭우가 섞이고

  번개와 우레로 혼절하는 가운데

  태풍이 눈을 뜬다, 저 고요한 중심.

 

  중심보다 더 고요히 울어 보았는가

  제 그릇보다 큰 슬픔 받아 몸 부서지는 바다는

  또 다시 중심을 향해 뒤 돌아서는 파도가 있어

  문을 달지 않는다

  수십억 년 부서진 파도로 채워지는

  바다 어디쯤, 중심을 향해

  들끓는 사람의 고요한 가슴들이 모여든다.

 

2008년 《애지》신인상 당선시

 

 


 

강서완 시인

1958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2008년 《애지》신인상에 〈달의 내력〉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서랍마다 별』(지혜, 2016)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