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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황석우 시인 / 태양(太陽)의 침몰(沈沒)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1.

황석우 시인 / 태양(太陽)의 침몰(沈沒)

 

 

태양(太陽)은 잠기다, 저녁 구름〔夕雲〕의 전광자(癲狂者)의 기개품같이 얼음비〔氷雨〕같이, 여울〔渦〕지고, 보랏빛으로 여울지는 끝없는 암굴(暗窟)에 태양(太陽)은 잠겨 떨어지다,

 

태양(太陽)은 잠기다, 넓은 들에 길 잃은

소녀(少女)의 애탄스러운 가슴 안 같은

황혼(黃昏)의 안을 숨〔潛〕여 태양(太陽)은 잠기다,

태양(太陽)은 잠기다, 아아 죽는 자(者)의 움푹한 눈같이

이국(異國)의 제단(祭壇)의 앞에 태양(太陽)은 휘돌아 잠〔翔沈〕기다

 

*이 전편(全篇)의 시(詩) 안에 특히 저녁이란 말이 많이 씌여 있으나 이는 한 세기말적(世紀末的) 기분(氣分)에 붙잡힌 나의 최근의 사상(思想)의 경향(傾向)을 나타낸 자(者)이다, 독자(讀者)여 양지(諒之)하라.

 

 


 

 

황석우 시인 / 벽모(碧毛)의 묘(猫)

 

 

  어느 날 내 영혼의

  낮잠터 되는

  사막의 수풀 그늘로서

  파란 털의

  고양이가 내 고적한

  마음을 바라다보면서

  (이 애, 너의

  온갖 오뇌(懊惱), 운명을

  나의 끓는 샘 같은

  애(愛)에 살짝 삶아 주마.

  만일에 네 마음이

  우리들의 세계의

  태양이 되기만 하면,

  기독(基督)이 되기만 하면.)

 

 


 

 

황석우 시인 / 석양은 꺼진다

 

 

  젊은 新婚의 夫婦의 지저귀는 房의

  窓에 불그림자가 꺼지듯이 夕陽은 꺼진다

  夕陽은 꺼진다.

  愛人아, 밤안으로 흠뻑 웃어다고.

  나의 質素한 處女의 살같은 깨끗한 마음을 펼쳐서

  네 눈이 부시게 되도록 너에게 뵈이마,

  내 마음에는 지금 받은 黃昏에 맥풀린 힘없는

  哀痛한 接吻의 자욱이 있을 뿐이다.

 

  愛人아, 밤안으로 흠뻑 웃어다고.

  나의 연한 마음이 펴져

  가을의 향기로운 夕月을 싸드키

 

  너의 부대끼고 孤寂한 魂을 싸주마.

 

  愛人아, 밤안으로 흠뻑 웃어다고.

  너의 웃음 안에 적은 幕을 치고

  地球의 끝에서 기어오는 앙징한 새벽이

  우리의 魂 앞에 돌아올 때까지,

  너와 이야기하면서 꿀을 빨드키 자려 한다.

 

  愛人아, 밤안으로 흠뻑 웃어다고,

  너의 그 微笑는 처음 사랑의

  뜨거운 惶惚에 턱을 고인

  소녀의 살적가를 춤추어 지내는

  봄저녁의 愛嬌 많은 바람 같고,

  또 너의 그 微笑는

  나의 울음 개인 마음에 繡논 작은 무지개같다.

 

  愛人아, 밤안으로 흠뻑 웃어다고.

  나의 가장 새로운 黃金의 叡智의 펜으로

  너의 玲瓏한 웃음을 찍어,

  나의 눈(雪)보다 더 흰 마음 위에

  黃昏의 키쓰를 序言으로 하여,

  아아 그 哀痛한 키쓰의 輪線 안에

  너의 얼굴을

  너의 기인 生涯를

  丹紅)으로, 藍色으로, 碧空色으로

  너의 가장 즐기는 빛으로 그려주마.

 

  愛人아, 밤안으로 흠뻑 웃어다고,

  내 마음이 醉해 넘어지도록

  너의 薔薇의 香氣 같고

  處女의 살香氣와 같은 속심(底力) 있는 웃음을 켜려한다

  愛人아, 웃어라, 夕陽은 꺼진다.

 

  愛人아, 밤안으로 흠뻑 웃어다고.

  네 웃음이 내 마음을 덮는 한 아지랑이일진댄

  네 웃음이 내 마음의 앞에 드리우는 한 꽃발일진댄

  나는 그 안에서 내 마음의 고은 化粧을 하마.

  네 웃음이 어느 나라에 길떠나는 한 바람일진댄, 구름일진댄

  나는 내 魂을 그위에 가비야웁게 태우마.

  네 웃음이 내 生命의 傷處를 씻는 무슨 液일진댄,

  나는 네 웃음의 그 끓는 坩堝에 뛰어들마

  네 웃음이 어느 世界의 暗示,

  그 生活의 한 曲目의 說明일진댄

  나는 나의 귀의 굳은 못을 빼고 들으마,

  네 웃음이 나에게만 열어뵈이는

  너의 悲哀의 秘密한 畵幅일진댄,

  나는 내 마음이 洪水 되도록, 울어주마.

  愛人아, 웃어라, 夕陽은 꺼진다.

 

월간 『폐허』 1920년 창간호(7월호) 발표

 

 


 

황석우[黃錫禹 1895∼1960] 시인

1895년 서울에서 출생. 호는 상아탑. 일본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과 졸업. 1920년에 김억, 남궁벽, 오상순, 염상섭 등과 함께 문학지 《폐허》의 동인이 되어 상징주의 시 운동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음. 이듬해에는 박영희, 변영로, 노자영, 박종화 등과 함께 동인지 《장미촌》 창간, 1929년에는 동인지 《조선시단》 창간.

중외일보, 조선일보 기자와 국민대학교 교무처장 등을 지냄. 저서로는 시집으로 『자연송』(1929)과 시화집 『청년시인 100인집』(1929)이 있고, 그외에 평론집 『조선시단의 발족점과 자유시』, 『일본시단의 2대 경향』, 『현일본 시상계의 특질과 그 주조』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