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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서진 시인 / 우리는 여전히 서어나무 숲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14.

최서진 시인 / 우리는 여전히 서어나무 숲

 

 

지나간 발톱이 수많은 팔을 붙잡고 꽃으로 피어날 때 몸 안에 바다도 떨고 있는 것 같아요

 

푸른 가지 끝에서 아홉 개의 가시와 아홉 개의 꽃이 피는 수요일이 존재합니다

 

바람이 불면 모르는 곳으로 움직이는 유령식물처럼

 

뻘다방을 지나 해풍으로 연결된 서어나무 숲은 여전히 발자국 소리가 없어요

 

매일 자라는 어둠 속으로 바다가 뒷모습을 감춰요

 

시간이 지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우리는 물고기처럼 완고해져요

 

구불구불 소리 없는 바다를 지나 뿌리 들린 삶의 리듬으로

 

수천 개의 가지로 바다가 바닷새로 날아가는 수요일의 세계

 

돌아오지 않을 물고기가 지나간 자리 같아요

 

얼굴에 난 칼자국처럼 모르는 시간의 바람이 불어요

 

등을 긁을 때마다 식은 노을처럼 식물들이 길게 우는 밤

 

발음해 보면 이름이 넓게 퍼지는 무수한 꽃을 따라

 

하염없이 손과 손을 흔들면서

 

격월간 『시와 표현』 2019년 3~4월호 발표

 

 


 

 

최서진 시인 / 복잡한 세계

 

 

칼의 경험과 총의 경험을 만든다

회오리바람과 분꽃, 그리고 별과 달의 의미

 

우리가 정한 게임의 이름은 자유의지

절망을 선택하든 희망을 선택하든

지금은 어둠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시간이야

 

승부를 결정짓는 건 손목의 힘 일거야

 

단풍나무 안으로 들어가자

나무의 영혼을 만지는 승부사처럼

내가 공을 굴리고 나의 핀이 넘어질 때

 

코피를 쏟기에 적당한 코

휴지를 돌돌 말아 지혈을 하는 건

각자의 슬픔으로 표시 된다

 

정확한 포즈로 우주를 굴리자

열개의 모순을 쓰러뜨리기 위해

 

명심하자 발끝을 옮길 때

공은 나보다 먼저 달려가는 것

모두 나의 부드러운 선택이라는 거처

만날 수 없는 먼지

 

그곳에 너는 쓰러지지 않고 서 있다

 

계간 『파란』 2018년 여름호 발표

 

 


 

 

최서진 시인 / 밤의 난간

 

 

죽은 새처럼 발을 모으고

백만 년 동안 걸어온 것 같아

 

우리는 끓는점을 가진 몸

지독하게 울면서 인간인 채로 태어난다

 

간절히 원하면

얻을 수 있을 것이란 망상으로 배가 고프고

물방울들이 물속에서 반짝였지

 

여기는 모두가 파랑새를 찾느라 목이 쉬는

밤의 정거장

 

불과 꽃이 닿는 곳마다

자유를 만난 것처럼 몸이 증발된다

 

물의 입자들이 날개를 달고

새의 언어로 날아 오른다

 

마음의 정면으로 구름이 채색될 때

나는 점점 밤이 되어간다

 

뜨거운 물을 몸에 쏟았을 때

무수한 물고기 떼처럼 오래 견뎌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고

 

그때부터 우리는 밤의 난간을 지니게 되었다

 

계간 『발견』 2019년 봄호 발표

 

 


 

최서진 시인

2004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우리만 모르게 새가 태어난다』가 있다. 『발견 』편집위원. 2018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