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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섭 시인 / 초록방정식
미뤄둔 약속을 지키려고 봄보다 먼저 고개 내민다
짓무른 색을 가감하고 다른 무늬들을 나누는 사이 초록의 함성으로 손 내밀던 계절의 값은 미지수
밤이 되면 x축 아래에서 나누었던 체온들이 마음의 모서리에 표식을 남기고
y축을 오르던 초록에 어떤 값을 대입해도 초록 여름에 주소를 둔 것들 머무는 순간이 이렇게 환하다니
초록 × 발자취 + 당신 = 산책 (고백 - 여름) ÷ 바다 = 속삭임 √ 나무+ 기다림 = 장마 (옹이+그늘) 2 = 침묵
영원할 것 같던 푸른 심장이 하나의 좌표를 이룰 때 한번의 짙은 만남 끝에 다가오는 계절에게 기울기를 내어주는 초록방정식
시집 『초록방정식(서정시학, 2017) 중에서
이희섭 시인 / 가득과 가족 사이
아내와 여행을 가다가 싸우고 돌아오는 길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들어간다
‘가득이세요?’ 라는 말이 ‘가족이세요?’ 라는 말로 들리는 순간
가득과 가족 사이에서 잠시 묘연해진다
가득이라는 것은 바닥난 속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고 가족이라는 것도 서로의 빈곳을 채워주어야 하는데
아내는 옆자리에서 눈감고 메마른 유전을 건너가고 있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금세 빠져나가는 사소한 빈틈 서로 다른 곳을 적시고 있는 건 아닐까 가득이 가족으로 들리는 배후가 궁금해진다
연료가 소진되며 자동차가 굴러가듯 그동안 우리 사이에 소진된 것은 무엇인가 소모되는 것들의 힘으로 일상을 지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닥난 가족을 가득 채우러 다시 길을 떠난다
시집 『스타카토』(황금알, 201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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