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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도이 시인 / 썰물의 문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25.

김도이 시인 / 썰물의 문장

 

 

낯선 곳에서 헤매던 혀는, 자꾸 어눌해져 분별 안 되는 말들만 뱉어냈다. 그러니까 사라지려는 건 꼭 붙잡고 있거나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해 마른 나무처럼 등 굽은 해변으로 걸어 나간 날 별들은 어슬렁 제 생각을 감추는 놀이에 열중했다 숲은 밤으로 어두워져 나무가 훌쩍 키를 늘려 반짝거리던 저녁 이파리들이 어미語尾처럼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깊어지는 그림자들의 침묵, 물결의 표정을 건져낼 수 없다

 

만삭의 달이 떠오를 거라는,

갯벌에 찍힌 익사의 발자국처럼

고립되어 있는 비문

 

달문月文이 열리기도 전

들개와 늑대가 밀물에 섞이며 우우

탈고한 빛깔로 섧게 울었다

 

당신이 받아줄 거라고 믿는 마음엔 변함없지만, 저녁은 어둠을 깔아놓고 썰물에 얹혀 제 문장을 찾아가는 중이다

 

계간 『딩아돌하』 2016년 봄호 발표

 

 


 

 

김도이 시인 / 내향성 발톱

 

 

네가 죽은 날부터 아무리 발을 뻗어도 안이야 바깥은 너무 멀어

 

병든 여름이 파고들어 문 밖을 나가지 않은 여러 날 째,

열리지 않은 방 안에 곰팡이가 숙주처럼 피어났다

 

숨어드는 음지에 내성을 키우고 뽑아버리지 못한 생각 욱신거리며 길바닥에 질질 끌리던 계절병들, 잘라낼 수 없는 자폐가 양말을 뚫고 안으로 자라는 불면의 넝쿨들과 조우했다

 

너는 제 방향을 모르는 계절, 맑았다가 흐렸다가 비가 왔다 방의 모서리에 구름을 풀어 놓으면 한쪽으로만 파고드는 불안들이 알약처럼 빼곡히 자라났다

 

비는 길어지고 오래전에 떨어져 죽은 앳된 너를 만나고 나는 다시 방문을 넘어가지 못했다

 

문 밖에

우기의 씨방이 사방으로 자라나

말문이 터지듯 붉은 열매가 위약처럼 쏟아졌지만

계절은 끝내 달력을 넘기지 못한다

 

계간 『열린시학』 2016년 겨울호 발표

 

 


 

김도이 시인

2014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얼룩의 시차』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