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강준철 시인 / 안테나 위로 올라간 부처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6.

강준철 시인 / 안테나 위로 올라간 부처님

 

 

  부처님이 법당이 답답하여

  안마당을 거닐다가

  물 한바가지를 마시고

  안테나 위로 날아 올라갔다

  수만 가정의 안방으로 부처님이 송신되었다. 그러나

  전파 장애로 아무도 부처님을 보지 못했다

 

  갈참나무에 올라가 목이 아프게 노래하던 부처님이

  방송국으로 날아가 새로운 버전으로 노래를 불렀으나

  이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T.V 수상기 고장으로 보지 못했다

  이튿날 조간신문 톱기사에

  "보지 못한 시청자들은 www.kbs.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라고

  대서특필 되었다

 

  목을 길게 빼고 부처님이 슬금슬금

  내 방문 안으로 기어 왔다

  그 때 전화가 왔다

  "우체국입니다. 댁으로 택배된 부처님이 반송되었습니다.

  확인하시려면 2번을 누르세요!"

 

  점심 때 국수를 맛있게 먹은 부처님이

  민들레 홀씨를 타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들어가 이메일로 송신되었다

  대부분 전송 실패로 되돌아 왔다

 

  한사코 고개를 가로 젓던 부처님이

  나무에서 추락하여

  석간신문으로 배달되었는데

  중생들이 광고인 줄 알고 휴지통에 버렸다

 

시집  『부처님, 안테나 위로 올라가다』(미네르바, 2012) 중에서

 

 


 

 

강준철 시인 / 정오(正午)의 바다에서

 

 

  두 개의 포크레인 같은 발로

  바위 틈을 어기적거리며 나를 바보 같은 놈이라고

  입에서 거품을 뿜어대던

  한 마리의 조그만 게마저 어디론가로 가버렸습니다

 

  단순한 권태倦怠를 출렁이며 하이얀 이빨로

  태고太古의 발성으로 바위를 씹던 파도도

  이제는

  한 음계

  낮아졌습니다

 

  멀리 수평선의 둥근 호弧 위엔 조그만 상선商船이

  연기를 뽑고

  바다는 층계를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8월의 태양이 나의 눈물을 증발시켜

  뽀얀 안개가 서립니다

 

  커다란 새들이 무수한 원을 그리며

  내 부끄러운 의식의 밑바닥에

  홱 검은 그림자를 던집니다

 

  갑자기 소름이 돋으며

  한 마리의 물고기가 헐떡이며 바위 위에 나자빠지고

  무수한 물고기들이 나의 어두운 갯바닥에서

  도망칩니다

 

  바다는 태고의 발성을 다시 시작합니다

 

  지금 내 방엔 귀여운 아가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시집 『바다의 손』(영언문화사, 2004) 중에서

 

 


 

강준철 시인

경북 성주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및 동아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 2003년 《미네르바》  봄호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바다의 손』, 『푸조나무가 웃었다』. 『부처님, 안테나 위로 올라가다』, 『나도 한번 뒤집어 볼까요?』, 『꿈서사문학 연구』가 있음. 현재 한국문협, 부산문협, 부산시협, 미네르바 작가회 회원, <시와 인식> 동인회 회장, 우리말글사랑행동본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