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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금녀 시인 / 자화상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6.

최금녀 시인 / 자화상

 

 

  기생이 되려다 못된 년들이

  글을 쓴다는

  김동리 선생님의 말씀으로

  화끈 달아오르는 내 얼굴,

 

  그렇다

  느지막하게 내린 신끼로 굿을 치고 다니는데

  선무당 사람잡는 소리가 등을 훑어내리고

  옷 속으로 식은 땀 쭉 쭉 흐른다

 

  애무당 하루라도 날춤을 추지 않으면

  아쟁이, 대금소리에 삭신이 아프고 저려서

  색색이 옷 차려입고 신 바람을 맞으며

  동서남북 발길 안 닿는데 없다

 

  세상만사 굿 한방이면 끝나는 듯

  작두날 위에서 물구나무 서며

  신끼 휘두르니 위태 위태하다

 

  소리도 배워

  사설도 익혀

  한거리 제끼면

  구경꾼도 모여들어 신기한 듯

  늦게 배운 도둑질이 가여운 듯

  박수도 쳐주어

  신명 끓어 넘치는

  기생 못된 선무당이여.

 

시집 『큐피드의 독화살』(종려나무, 2007) 중에서

 

 


 

 

최금녀 시인 / 감꼭지에 마우스를 대고

 

 

  내 몸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를 따내온 흔적이 감꼭지처럼 붙어 있다

  내 출생의 비밀이 저장된 아이디다

 

  몸 중심부에 고정되어

  어머니의 양수 속을 떠나온 후에는

  한 번도 클릭해 본 적 없는 사이트다

 

  사물과 나의 관계가 기우뚱거릴 때

  감꼭지를 닮은 그곳에 마우스를 대고

  클릭, 더블클릭을 해보고 싶다

 

  감꼭지와 연결된 신의 영역에서

  까만 눈을 반짝일 감의 씨앗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나는 배꼽을 들여다본다

 

  열어볼 수 없는 아이디 하나

  몸에 간직하고 이 세상에 나온 나,

 

시집 『저 분홍빛 손들』(문학아카데미, 2006) 중에서

 

 


 

최금녀 시인

1998년 《문예운동》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제 1시집 『들꽃은 홀로 피어라』, 제 2시집 『가본 적 없는 길에 서서』, 제 3시집 『내몸에 집을 짓는다』, 제 4집 일본어 번역시집 『그섬을 가슴에 묻고』(東京文藝館) , 제 5시집 영어시집 『저 분홍빛 손들』이 있음. 현대시인상, 미네르바 작품상, 충청문학상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 수상. 서울신문과 대한일보 기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