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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민주 시인 / 고흐의 구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7.

양민주 시인 / 고흐의 구두

 

 

  주간신문에 황새 사진이 실렸다

  내 눈을 키운 이것은 환영 혹은 고흐

  초혼의 적삼 타고 날아온 넋일까

 

  늪은 구두끈을 풀고 황새의 발을 들였다

  가는 다리에 한줄기 적막이 신겨지고

  두리번거리는 수면의 파문

  황새는 번갈아 구두를 한 짝씩 신었다

  신겨지지 않은 구두는 이슬에 젖어 목이 꺾이고

  신겨진 구두는 입구가 둥글었다

 

  험로에 증표로 떠 있는 낮달

  야윈 발목에 큰 구두를 끌고 가는 아버지

  간혹 황새가 되기도 하는

  그것은 이승과 저승의 삶이 아닐까

 

  물고기를 부리로 꽉 집어삼키고

  긴 목을 빼고 꺽 꺽 꺽 울음을 날리자

  늪은 갈색 수의 갈아입고 영원의 문을 연다

  물결이 잠든 순간 갈대는 고개를 들고

  황새는 구두를 벗어두고 떠나버렸다

 

  목이 꺾어진 고흐의 구두 한 켤레만 남았다

 

  주간신문에 황새의 울음이 실리고

  새 구두를 신은 아버지의 옷자락이 펄럭인다

 

시집 『아버지의 늪』(황금알, 2016) 중에서

 

 


 

 

양민주 시인 / 양파 산성

 

 

  고향에 가면

  붉은 망에 양파를 담아

  아스팔트 길가에 성을 쌓아 놓았다

  성은 산에만 쌓는 줄 알았다

  성은 모난 돌로만 쌓는 줄 알았다

  성은 옛날의 유물인 줄 알았다

  풍년이 들수록 성은 길게만 쌓이고

  그만큼 불신의 벽은 단단해지고

  성문에는 굽은 허리 짚고

  뒷걸음치는 지팡이로

  양파 뿌리 같은 머리카락이 경계를 선다

  날 세운 햇빛을 앞세워 후드득

  쳐들어오는 한줄기 소나기

  오락가락하는 장맛비 전쟁에

  썩어 허물어지는 성곽

  가증스러운 각다귀 떼가 점령한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란 걸 알면서도

  해마다 아버지는 성을 쌓았다

 

시집 『아버지의 늪』(황금알, 2016) 중에서

 

 


 

양민주 시인

1961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 인제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졸업. 2006년 《시와 수필》을 통해 수필로, 2015년 《문학청춘》을 통해 시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수필집 『아버지의 구두』와  시집 『아버지의 늪』(황금알, 2016)이 있음. 현재 김해문인협회 회장이며 인제대학교 문리과대학 행정실장. 2015년 제11회 원종린수필문학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