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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주 시인 / 고흐의 구두
주간신문에 황새 사진이 실렸다 내 눈을 키운 이것은 환영 혹은 고흐 초혼의 적삼 타고 날아온 넋일까
늪은 구두끈을 풀고 황새의 발을 들였다 가는 다리에 한줄기 적막이 신겨지고 두리번거리는 수면의 파문 황새는 번갈아 구두를 한 짝씩 신었다 신겨지지 않은 구두는 이슬에 젖어 목이 꺾이고 신겨진 구두는 입구가 둥글었다
험로에 증표로 떠 있는 낮달 야윈 발목에 큰 구두를 끌고 가는 아버지 간혹 황새가 되기도 하는 그것은 이승과 저승의 삶이 아닐까
물고기를 부리로 꽉 집어삼키고 긴 목을 빼고 꺽 꺽 꺽 울음을 날리자 늪은 갈색 수의 갈아입고 영원의 문을 연다 물결이 잠든 순간 갈대는 고개를 들고 황새는 구두를 벗어두고 떠나버렸다
목이 꺾어진 고흐의 구두 한 켤레만 남았다
주간신문에 황새의 울음이 실리고 새 구두를 신은 아버지의 옷자락이 펄럭인다
시집 『아버지의 늪』(황금알, 2016) 중에서
양민주 시인 / 양파 산성
고향에 가면 붉은 망에 양파를 담아 아스팔트 길가에 성을 쌓아 놓았다 성은 산에만 쌓는 줄 알았다 성은 모난 돌로만 쌓는 줄 알았다 성은 옛날의 유물인 줄 알았다 풍년이 들수록 성은 길게만 쌓이고 그만큼 불신의 벽은 단단해지고 성문에는 굽은 허리 짚고 뒷걸음치는 지팡이로 양파 뿌리 같은 머리카락이 경계를 선다 날 세운 햇빛을 앞세워 후드득 쳐들어오는 한줄기 소나기 오락가락하는 장맛비 전쟁에 썩어 허물어지는 성곽 가증스러운 각다귀 떼가 점령한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이란 걸 알면서도 해마다 아버지는 성을 쌓았다
시집 『아버지의 늪』(황금알, 201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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