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희 시인 /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
눈동자를 자주 쳐다보는 사람은 언젠가 떠나게 되어있지 눈동자는 또 다른 눈동자를 부추기지 검은 눈동자 흰 눈동자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 하늘에 있는 구름이 눈동자 속으로 흘러들면 그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지 구름이 풀린 사람을 본 적 있니? 흰구름이 검은 구름을 침범한 걸 본 적 있니? 그는 눈동자에 발목을 잡힌 사람, 그의 눈동자는 지금 여기를 보지 않고 언제나 저 멀리 허공을 보고 있지 오래 전 김시습이 그랬고 임제와 김삿갓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세상에 없는 길을 찾고 있지 구름처럼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고 있지 만약 저들 중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당신도 벌써 구름이 선택한 사람, 만약 스튜어디어스나 등반가를 꿈꾼다면 당신은 벌써 구름에 중독된 사람 사람 마음이 열두 번도 더 바뀌는 것도 구름 때문이야 마음을 붙잡고 싶다면 눈동자를 매달아 두는 게 좋을 거야 쉿! 저기 저 구름 조심해!
시집『푸른 빛이 걸어왔다』(시와표현, 2016) 중에서
정선희 시인 / 뱀을 신다
굽이 없는 구두였다 반으로 접으면 스르륵 접히는 구두였다 그 구두를 신으면 소리 없이 걷게 된다 발 없이 빠르게 걷게 된다 햇빛을 보면 반짝이는 구두 얼핏 눈빛을 본 것 같다 주변 색과 잘 맞추는 구두 저절로 풀숲을 향하게 된다 축축한 곳을 찾게 된다 혀를 날름거리게 된다 뱀에게 사로잡힌 발 발을 꽉 물고 있는 뱀 좀처럼 벗겨지지 않는 발 발에 힘을 줄 수가 없다 뱀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발 서서히 독이 번지는 발 이제 내 것이 아닌 발 그 어떤 통증도 없이 마비가 진행되는 발, 나는 잠시 망설인다 뱀에게 발목을 던져주고 다리를 건질까? 벗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감촉, 뱀도 신발도 없는데 이 선뜩한 기운,
시집『푸른 빛이 걸어왔다』(시와표현, 2016) 중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영심 시인 / 소리의 정원 외 1편 (0) | 2019.06.18 |
|---|---|
| 금시아 시인 / 안개는 사람을 닮았다 (0) | 2019.06.18 |
| 허민 시인 / 기나긴 목 (0) | 2019.06.18 |
| 이선 시인 / 아침을 건너, 저녁에 도착한 비밀한 기도 (0) | 2019.06.18 |
| 김인숙 시인 / 누가 내 거울을 가져가는지 (0) | 2019.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