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심 시인 / 소리의 정원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명주바람의 숨결로 너는 온다
비강과 공명강을 건너 솔 숲길 솔 향을 담은 무용선으로
고요하게 흔들리며 한 올 한 올 한삼자락 타고 한 박에 한 걸음씩 온 박으로 두 박에 반박을 차고 덧걸음 사뿐 얹어서 까치채로 재금재금 나와 반박을 스쳐 멎숨 엇박으로 잘근잘근 끊어도 끊길 듯 이어지며 맺는 듯 푸는 듯 들숨 날숨 동글동글 이음매 동글리며 온다, 왔다, 끝 선에 잡아둔 숨결을 살짝 놓아 다시 먼 곳으로 보낸다
목소리로 만든 악기, 아카펠라 공문(空門)을 오르내리는 소리의 춤사위 익히듯 열꽃 핀 이 호흡도 한자락 입춤이면 좋겠다
시집 『소리의 정원』(시산맥사, 2016) 중에서
조영심 시인 / 담을 헐다
담을 헐기 시작했다 담들이 낮아지고 있다 내 것임을 완고하게 주장해왔던 담 온몸에 철조망을 두르고 정수리에 유리조각까지 박았던 담장 물고 물린 땅 때문에 먼 핏줄보다 낫다던 이웃과 쌓고 살았던 담벼락 도시의 담을 없애자 간격들이 허물어지자 사방이 팔방이다
이참에 나도 담*을 헐었다 나를 위협할 그 무엇에게 쓴맛을 보여줄 요량으로 담아두었던 쓰디쓴 주머니
제 속 버리는 일인 줄 모르고 남의 허물 덮어 줄 줄 모르더니 결국, 내 배에 구멍을 내어 담을 헐고 쓴맛을 보았다
담이 사라져 문턱이 낮아져 와신상담(臥薪嘗膽)할 일 없고 쓸데없는 담력 보일 일도 없고 오래 전, 서로의 담을 허물지 못한 네가 떠났고 이제는 담도 사라져 넘볼 일도 없겠다
*쓸개膽
시집 『담을 헐다』(애지 2011) 중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임희숙 시인 / 말미(末尾)에 가다 외 1편 (0) | 2019.06.18 |
|---|---|
| 김백겸 시인 / 세포 도시 (0) | 2019.06.18 |
| 금시아 시인 / 안개는 사람을 닮았다 (0) | 2019.06.18 |
| 정선희 시인 /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 (0) | 2019.06.18 |
| 허민 시인 / 기나긴 목 (0) | 2019.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