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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백겸 시인 / 세포 도시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8.

김백겸 시인 / 세포 도시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찍은 세포를 들여다보면 세포는 하나의 도시국가입니다. 3만개의 단백질 교환센터가 에너지와 물질을 풀어 고도질서의 세포 도시를 운영합니다. 중앙에 세포핵이 성전처럼 있고 핵산에는 생명체의 시원인 DNA가 이스라엘의 성궤처럼 모셔져 있군요. 질소염기 AGCT의 알파벳으로 쓰여진 유전암호는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생명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인간의 염색체 23쌍은 500쪽 4000권의 장서로 채워진 도서관과 같다고 합니다. 인간의 몸은 100조의 세포도시가 모여 복잡계의 질서를 이룬 은하성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구생태계는 약 3천만종으로 분류된 생명연합의 다중우주이군요.

 

그러나 이 모두는 세포라는 문법으로 쓴 생명의 책들. 플라타너스의 잎맥과 당신의 정맥은 수액과 혈액을 운반하는 상동(相同)기관입니다. 이중나선 모양의 DNA의 총길이는 약 2000억km. 야곱의 사다리처럼 지상에서 하늘까지 늘어선 ‘생명의 나무’입니다.

 

5억 년 전 캄브리아기에 생명의 폭발이 일어나 생명의 에덴동산이 지구에 펼쳐졌습니다. 1만 년 전 인간의 의식이 문자로 기록되면서 문명의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21세기는 지식이 매 2년마다 배증하는 정보 폭발의 시대. 뇌 안의 가상세계가 현실의 시공간을 지나 풍선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뇌세포도 DNA가 쓴 문법이므로 인간의 의식이란 ‘생명장(生命場)’ 스스로의 생각일까요. 식물들의 ‘오라'와 ’페로몬'도 식물들의 의식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모든 질문의 답을 품고 있는 생명은 번식의 춤을 추느라 몸이 달아올랐습니다. 해바라기는 태양아래 꽃을 피우고 공작새는 채색 무늬의 꼬리 깃을 부채처럼 펼쳤습니다. 당신은 연인의 검은 눈동자를 보며 사랑에 빠져있습니다.

 

 

‘오라aura': 식물과 인체등의 생명체에서 발산하는 에너지장, 키를리안 사진술로 촬영한다

’페로몬pheromone': 동물종의 커뮤니케이션에 사용되는 체외분비성 물질이지만 식물의 수액도 기능이 겹치는 부분이 있음

 

계간 『창비』 2012년 여름호 발표

 


 

김백겸 시인

1953년 대전에서 출생. 충남대학교 경영학과와 경영대학원 졸업.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 『가슴에 앉힌 산 하나』『북소리』, 『비밀 방』, 『비밀정원』, 『기호의 고고학』  등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主幹 역임. 현재 시힘, 화요문학  동인. 대전시인협회상, 충남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