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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숙 시인 / 말미(末尾)에 가다
말미는 말 그대로 사물의 끄트머리, 가장 먼 데에 있을 법한 처소격이다
그러나 나는 말미에 갔다 개울가에는 큰물에 뽑히고 다친 풀들의 주검이 엉켜 있고 매미는 나무에 붙은 여름을 빨아먹으며 칠 년을 기다려서 피 터지게 울었다 번식하기 위해 미물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계절이 다음 꽃을 위해 젊음을 버리는 끄트머리
무수히 많은 꽃과 벌레들이 숨어든 말미는 누구나 수정을 하고 교미를 하는 아주 오래된 원시림 그대에게 썼던 편지에 떨어진 한 방울의 피 마지막이라고 여겼던 참혹한 시간들은 사실은 신성한 낭떠러지였다
처소격으로 들고 나면 말미 끝에 또 말미가 있어 여전히 말미에는 도착하지 않았다 수정을 끝낸 꽃잎이 떨어지고 매미의 목청은 잦아들어 도대체 끊어질 틈이 없는 시간의 윤회 속 그래서 나는 당당히 말미로 갔다
시집 『나무 안에 잠든 명자씨』(시안, 2011) 중에서
임희숙 시인 / 결정(結晶)에 대하여
전라남도 신안의 소금은 깎아 세운 벼랑과 서슬 푸른 각 속에 바다를 가두고 경계를 풀지 않는 들짐승처럼 상처투성이다
알래스카 앞바다와 파푸아뉴기니를 돌던 바닷물이 소금의 몸 안으로 滿滿히 들어갈 때까지 몸이 곧 결정이 되는 생애 바다의 결정은 소금이고 소금의 결정은 소금인 것처럼 매화나무는 푸른 열매를 낳고 사람은 사람을 생산하여 맑은 舍利 서너 알과 몇 권의 책
바다를 가둔 소금은 오로지 소금이 아니어서 결정이 아니고 사람의 몸도 세계를 품어서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뜯기어 몸에 가둔 소금물이 질금거리는 나의 결정은 피 한 방울 뜨거운 소금창고에 엎드려 시를 쓰는 새벽 질금거리다 녹아내리다 사라지고야 말 오로지 悲戀인 내 몸이 결정이다
시집 『나무 안에 잠든 명자씨』(시안, 20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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