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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권 시인 / 시인론
매일 시를 읽는 왕과 시를 읽는 법관과 시를 읽는 환경론자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꽃처럼 번지는 슬픔을 읽을 수 있다면 마른 뿌리를 흔드는 빗물처럼 모든 피어나는 것들에 손 내밀 수 있다면 누구나 시인이다 정의다, 바다다
시집 『단디』 (시인동네, 2015) 중에서
한상권 시인 / 그 이층집 여자의 피아노 소리
내가 이사 갔던 K읍 살구나무집에는 늦은 이월부터 피아노 소리가 피기 시작했다. 처음엔 풋나무를 간질이는 바람쯤 생각했는데 어느새 사월의 꽃가지를 농하듯 일렁이던 햇살, 조금씩 나는 건너편 이층 방이 궁금했다. 블록으로 세운 담을 담쟁이넝쿨처럼 올라가 아니 플라스틱 간이막 위로 종이비행기를 날려 오랫동안 그 방의 정체를 엿보고 싶었다. 농염한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살구나무는 흔들리지 않던 한 여자의 창문을 흔들었다. 나는 빗방울 소리처럼 터지는 탄성을 참으며 잘 익은 텃밭의 살구 한 개를 따서 그 여자의 창문 안으로 던지기도 했다. 살구는 그 여자의 가슴을 열고 들어갔을까. 간간이 열리던 햇살이, 간간이 타들어가던 그 여자의 창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할 무렵 아아 가을이 가고 그 여자의 이삿짐 트럭이 살구나무집 앞길을 가로질러 사라졌다. 내 흰 눈 내리던 가슴 속엔, 피아노 소리가 오랫동안 살구처럼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다.
시집 『단디』 (시인동네,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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