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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 시인 / 축제
물길 뚫고 전진하는 어린 정어리 떼를 보았는가 고만고만한 것들이 어떻게 말도 없이 서로 알아서 제각각 한 자리를 잡아 어떤 놈은 머리가 되고 어떤 놈은 허리가 되고 꼬리도 되면서 한몸 이루어 물길 헤쳐 나아가는 늠름한 정어리 떼를 보았는가 난바다 물너울 헤치고 인도양 지나 남아프리카까지 가다가 어떤 놈은 가오리 떼 입 속으로 삼켜지고 가다가 어떤 놈은 군함새의 부리에 찢겨지고 가다가 어떤 놈은 거대한 고래 상어의 먹이가 되지만 죽음이 삼키는 마지막 순간까지 빙글빙글 춤추듯 나아가는 수십만 정어리 떼, 끝내는 살아남아 다음 생을 낳고야 마는 푸른 목숨들의 일렁이는 춤사위를 보았는가 수많은 하나가 모여 하나를 이루었다면 하나가 가고 하나가 태어난다면 죽음이란 애당초 없는 것 삶이 저리 찬란한 율동이라면 죽음 또한 축제가 아니겠느냐 영원 또한 저기 있지 않겠는가
시집 『축제』(애지, 2007) 중에서
김해자 시인 / 無花果는 없다
장대비 속 후줄근한 시위는 끝나고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고 피어나지 못한 채 시들어가는 부용산, 노래 같은 떨거지끼리 미라가 되어버린 생강이며 무화과 안주삼아 술을 마시다 문득 떠오른 남녘 땅 무화과 수
어릴 적 마당가 돌담에 단단히 서 있었지 크낙한 잎을 따면 하얀 수액 방울방울 흐르고 퍼렇다 못해 어두운 그늘 깊던, 산수유며 해당화 다 피고 지도록 벌 나비도 찾지 않아 늘 외로워 보이던,
꽃 없는 과실이 어디 있으리 조금 늦게 피는지 몰라 수술 그득 채우느라 꽃잎이며 꽃받침 밀어 올릴 틈이 없는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지도 몰라 꽉 찬 살이 터지며 꽃잎을 터트릴 때까지 과육의 껍질이 꽃을 숨기고 있었던 거라구
보아, 십자로 벌어진 과육이 터트린 네 잎의 꽃 열린 꽃잎 사이로 반짝이는 수백의 꽃술을 그러니까 기다림이 꽃잎을 틔우는 거야 천천히 보아, 진한 자홍색의 향기를 裡花果의 속살을
시집 『無花果는 없다』(실천문학, 200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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