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희구 시인 / 소주 한 병이 공짜
막 금주를 결심하고 나섰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감자탕 드시면 소주 한 병 공짜란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삶이 이렇게 난감해도 되는 것인가 날은 또 왜 이리 꾸물거리는가 막 피어나려는 싹수를 이렇게 싹둑 베어내도 되는 것인가 짧은 순간 만상이 교차한다 술을 끊으면 술과 함께 덩달아 끊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 한둘이 어디 그냥 한둘인가 세상에 술을 공짜로 준다는데 모질게 끊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불혹의 뚝심이 이리도 무거워서야 나는 얕고 얕아서 금방 무너질 것이란 걸 저 감자탕집이 이 세상이 훤히 날 꿰뚫게 보여줘야 한다 가자, 호락호락하게
시집 『소주 한 병이 공짜』(문학의 전당, 2011) 중에서
임희구 시인 / 1964
그 해 겨울은 암담했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 뱃속에 있었으므로 처리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으나 손끝 하나 댈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끊임없이 눈보라가 쳤다 어머니 뱃살로 느껴지는 쌩쌩한 바람들이 날마다 귓전을 울렸다 그 무렵 아버지는 대패질을 하면서 다시는 건너오지 못 할 먼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암세포처럼 독한 약풀에도 지워지지 않는 지독한 싹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아야할 생을 생살로 터득하면서 죽은 듯이 입 꼭 다물고 눈 꼭 감고 한없는 날들을 웅크리고 있었다 어머니 그렇게 나를 지우고 지우며 품었다 그 혹독한 겨울이 물러가고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고 저물어 아픈 것들이 아득아득해지면
시집 『소주 한 병이 공짜』(문학의 전당, 2011) 중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영찬 시인 / 군중 속의 방백(傍白), 또는 황야에 내던져진 언어들 (0) | 2019.06.24 |
|---|---|
| 전다형 시인 / 수선집 근처* (0) | 2019.06.24 |
| 김해자 시인 / 축제 외 1편 (0) | 2019.06.23 |
| 한상권 시인 / 시인론 외 1편 (0) | 2019.06.23 |
| 고미경 시인 / 칸트의 우산 외 1편 (0) | 2019.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