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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기 시인 /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당신이 지나고 있네 풀잎을 밟으시면 풀잎 소리로 대밭을 밟으시면 댓잎 소리로 저기 당신이 지나고 있네 그 언젠가 당신이 나를 지나가실 때 으스러지게 당신을 껴안았더니 너무나도 어지럽던 그 밤 끝내 긴 울음으로 당신을 배워 당신이, 내 여름을 지나가시면 까끌까끌한 볏잎 소리로 내 가을을 지나가시면 누런 벌판의 그 술렁거림으로 눈감고 가만히 당신이 지나가시는 소리 오늘은 내 창 흔들어 지나가시기에 온 등(燈) 밝혀 가난한 밤을 맞으니 내 가슴, 당신 지나가는 소리 당신 가슴, 내 지나가는 소리
시집 『세상은 내게 꼭 한 모금씩 모자란다』(리토피아,2006) 중에서
김승기 시인 / 역(驛)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 세월 그냥 버티다보면 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가 될 줄 알았다 기적이 운다 꿈속까지 따라와 서성댄다 세상은 다시 모두 역일뿐이다 희미한 불빛 아래 비켜가는 차창을 바라보다가 가파른 속도에 지친 눈길 겨우 기댄다 잎사귀 하나 기어이 또 가지를 놓는다
시집 『역驛 』(2011, 북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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