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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두안 시인 / 이상주의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5.

김두안 시인 / 이상주의자

 

 

  제 꽃을 받아주세요 (당신은 지금 거꾸로 서 있잖아요)

  바위 속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요 (전 헨델의 메시아 중 할렐루야를 좋아해요)

  지휘자가 서 있는 무대를 말하는군요 (수평선을 보며 제가 출렁거리는 거죠)

  나는 황금빛 물고기가 되고 싶어요(전 어항 인걸요)

  의자에 앉아주세요 (당신이 앉아 있잖아요)

  제 모자는 못에 걸려 있어요 (저는 아버지가 없는 걸요)

  새와 당신은 무슨 관계인가요 (우는 소리는 파랗고 하늘은 거울인 걸요)

  가로등과 나뭇가지 사이를 얘기하는군요 (저의 겨울이 흔들려요)

  당신은 자주 창밖을 보나요 (저는 가방속에 들어 있어요)

  저의 사랑을 받아주세요 (제가 당신을 방금 낳았잖아요)

  새와 와인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제가 즐겨 읽던 두 권의 책이죠)

  노을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 하세요 (한쪽 발은 바다에 한쪽 발은 육지에 있는 걸요)

  나는 당신을 찾아 해변을 뛰어다녔어요 (당신을 달이 외면하더군요)

  아버지가 말했어요 너의 어머니는 새였단다 (어머니는 늘 배 위에 앉아 있었어요)

  당신의 아름다운 노래는 어디에 내재되어 있나요 (저의 노란 모자가 가끔 펄럭거려요)

  어젯밤 당신의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그곳에는 바다가 없었어요)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검은 새 떼를 본적 있나요 (당신의 이름을 불렀었죠)

  당신에게 행운의 숫자와 작은 배를 주고 싶어요 (저는 이미 부두인 걸요)

  저는 줄곧 해변에서 당신을 기다렸어요 (바위가 마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군요)

  잔잔한 바다 위를 달려가고 싶어요 (저에게 물컵을 주세요)

  구름이 당신 형상으로 다가 올 때가 있어요 (그냥 찢어버리세요)

  등대불이 반짝거리기 시작 했군요 (고양이는 자전거를 타고오지 않아요)

  저기 북극성이 보여요 (제 발목에 묶인 끈을 풀어주세요)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의 비밀을 알고 있나요 (부두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군요)

  저는 벌써 나이 든 연필인 걸요 (아직도 새들은 날아다니잖아요)

  수평선에 집을 짖겠어요 (지붕 위에 앉아 있진 마세요)

  지금도 제가 거꾸로 서 있나요(저는 돌아 서서 가고 있잖아요)

  언젠가 보랏빛 수면 위로 날아오실 건가요( 제 아이들이 함께 온다면요)

  당신은 이상주의자 인가요 (당신이 지독하게 바라보는 창문이죠)

 

월간 『현대시』 2011년 2월호 발표

 

 


 

 

김두안 시인 /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을 꽃이라고 부른다

  나는 꽃을 꺾어 해안에 던진다

 

  새들이 부리를 닦고 바위에 사람 이름을 새긴다

  눈썹처럼 돌아온 새가

  차갑게 우는 것은

  아직도 저녁 불빛을 향해 배 위를 달려가는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을 등대라고 부른다

  나는 불빛을 꺾어 바위에 던진다

 

  새들이 침묵을 물고 바위 속에 제 그림자를 접어 넣는다

  말갛게 씻긴 발을 들이고 신열에 떨며 몸을 웅크린다

  새들이

  눈을 감고 바라보는 낡은 부리에는 어느 백랍 같은 영혼의 냄새가 묻어 있다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을 안식처라고 부른다

  나는 돌아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기로 한다

 

  어두운 심연에서 떠오른 안개가 거대한 혀로 바위를 삼키고 해안을 점령한다

  폭풍우 속으로 사라졌던

  검은 배가 처량한 뱀의 소리를 내며 부두에 와 닿는다

  안개 속에서 폐허가 된 마을로 걸어가는 젖은 발소리가 들린다

 

  짙은 안개는

  새들의 바위를 다 어쨌을까

 

  안개 속으로 섬이 사라지고

  죽은 이름들 밀려오는 밤이면 새들은 꽃을 먹지 않는다

 

 월간 『현대시』 2011년 2월호 발표

 

 


 

김두안(金斗安) 시인

1965년 전남 신안군 임자도 출생.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거미집〉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달의 아가미』(민음사, 2009)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