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담 시인 / 바다 의자
마을 바람벽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는 나무의자 밤마다 남몰래 걸어 나온 바다가 앉았다 간 양 결마다 물결이 내려앉은 흔적 또렷하다 온몸이 가슴인 바다도 제 수평선을 바라보기 위해 저리 작은 의자에 기대기로 한 것일까 큰 품일수록 공허의 빈자리도 넓은 것이어서 깊은 水心을 얻었을까 물고기들에게 지느러미를 빌려 하늘 끝까지 헤엄치고 돌아온 듯 바다는 흡족한 얼굴이다 부레를 단 구름을 풀어놓고 낱장의 가슴 넘기며 심해의 살 냄새를 확 풍기는 빈 바다 의자, 한 번쯤 제 속을 뒤집어보고 싶던 태풍마저 팔베개하고 눕게 하였으니 바다 속 기도로 짜 맞춘 저 자리엔 어떤 외로움이 앉아도 엄살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시집 『고전적인 저녁』(서정시학, 2011) 중에서
이지담 시인 / 목탁
나무로 서서 새소리 물소리 천둥번개 소리 다 들이켜더니
햇살 속 귀 밝은 소리, 결마다 쟁이며 박달나무로 자라더니
저를 버리려고 늪 속에서 오래도록 묵힌다
늪이 감겨들면 소리들을 삼켰다 뱉어냈다 되풀이하며
깨지지 않을 소리만 남겨두고 푹푹 찌고 말려
득음에 이를 때까지 제 속을 파내는 그,
동자승은 노승을 두드리고
아이들은 나를 두드려 경전을 읽는다.
시집 『고전적인 저녁』(서정시학, 20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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