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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지담 시인 / 바다 의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30.

이지담 시인 / 바다 의자

 

 

마을 바람벽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는 나무의자

밤마다 남몰래 걸어 나온 바다가 앉았다 간 양

결마다 물결이 내려앉은 흔적 또렷하다

온몸이 가슴인 바다도 제 수평선을 바라보기 위해

저리 작은 의자에 기대기로 한 것일까

큰 품일수록 공허의 빈자리도 넓은 것이어서

깊은 水心을 얻었을까

물고기들에게 지느러미를 빌려 하늘 끝까지 헤엄치고

돌아온 듯 바다는 흡족한 얼굴이다

부레를 단 구름을 풀어놓고 낱장의 가슴 넘기며

심해의 살 냄새를 확 풍기는 빈 바다 의자, 한 번쯤

제 속을 뒤집어보고 싶던 태풍마저 팔베개하고 눕게 하였으니

바다 속 기도로 짜 맞춘 저 자리엔

어떤 외로움이 앉아도 엄살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시집 『고전적인 저녁』(서정시학, 2011) 중에서

 

 


 

 

이지담 시인 / 목탁

 

 

  나무로 서서 새소리 물소리 천둥번개 소리 다 들이켜더니

 

  햇살 속 귀 밝은 소리, 결마다 쟁이며 박달나무로 자라더니

 

  저를 버리려고 늪 속에서 오래도록 묵힌다

 

  늪이 감겨들면 소리들을 삼켰다 뱉어냈다 되풀이하며

 

  깨지지 않을 소리만 남겨두고 푹푹 찌고 말려

 

  득음에 이를 때까지 제 속을 파내는 그,

 

  동자승은 노승을 두드리고

 

  아이들은 나를 두드려 경전을 읽는다.

 

시집 『고전적인 저녁』(서정시학, 2011) 중에서

 

 


 

이지담 시인

전남 나주에서 출생. 2003년 《시와 사람》과 2010년 《서정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고전적인 저녁』(서정시학, 2011)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