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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병일 시인 / 옆구리의 발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30.

이병일 시인 / 옆구리의 발견

 

 

나는 옆구리가 함부로 빛나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먼 바다가 감쪽같이 숨겨놓은 수평선과 아가미가 죽어 나뭇잎 무늬로 빛나는 물고기와 칼을 좋아해 심장의 운명을 감상하는 무사와 무딘 상처 속에서 벌레를 키우는 굴참나무는 매끈한 옆구리를 지녔다

 

살아간다는 것은 옆구리의 비명을 엿듣는 일

그러나 일찍이 아버지는 백열등으로 괴는 늑막염소리 듣지 못했다

갈비뼈를 자르고 한쪽 폐를 후벼 파내는 시원한 통증을 맛봐야했다

 

옆구리에 속하는 것들아

옆구리에 속하지 않는 것들아

나는 먼 곳의 옆구리가 비어 있어 풍요롭다고 생각한다

 

오늘 나는 일몰의 격포바다에서

세상의 옆구리에 박히는 붉은 심장의 박동을 세어보기 위해

하루하루 고독을 씹어 빛나는 수평선의 옆구리를 위해

해와 달의 시간이 포개어지는 저녁이 되었다

 

옆구리는 환하고 낯선 하나의 세계 혹은 감미로운 상처가 풍미하는 절벽이다

나는 아버지의 옆구리가 길고 낮게 흐느껴 우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옆구리는 촉촉이 젖었고 그 옆구리는 새까맣게 죽었고 그 옆구리는 비명을 삼킨 흉터가 되었다

 

이제 나는 옆구리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쁜 옆구리를 가진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시집 『옆구리의 발견』(창비, 2013) 중에서

 

 


 

 

이병일 시인 / 격장

 

 

작은 돌, 큰 돌, 옆구리가 깨진 돌, 대가리 날카로운 돌 모아 담장을 쌓아올린다. 황토와 짚을 잘 섞어서 두 집 사이에 돌 울타리를, 매화나무와 감나무의 경계선을 후회도 없이 쌓아올린다. 나는 큼지막한 돌덩이를 양손으로 옮긴다, 감나무 그늘로 옮긴다. 저만치 매화나무 꽃눈이 지켜봐도 돌풍과 작달비에 끄떡없는 돌담을 쌓는다.

 

오늘 나는 담장을 쌓아올리며 겨우내 잠자던 어깨 근육을 흔들어 깨웠다. 돌덩이 하나 놓고 수박만한 태양을 놓는다. 돌덩이 하나 놓고 굴참나무숲 그림자를 놓는다. 곰곰이 바람의 각도와 수평을 맞추고 또 다시 돌덩이와 재미없는 한낮의 하품을 마저 놓는다. 그때 나는 줄곧 이 담장타기를 좋아하는 장미나 능소화의 유쾌한 질주를 생각한다.

 

나는 자명하게도 담장을 쌓는 일에 끝없는 동작으로 있는 힘을 탕진 중이다. 누가 또 돌담을 쌓아 격장(隔墻)을 이루는가, 그러나 나는 돌담처럼 맑디맑게 정다울 것이다

 

시집 『옆구리의 발견』(창비, 2013) 중에서

 

 


 

이병일 시인

1981년 전북 진안에서 출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대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2005년《평화신문》 신춘문예와 2007년 《문학수첩》신인상 시 당선.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희곡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옆구리의 발견』(창비, 2012)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