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장대송 시인 / 초분 (草墳)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1.

장대송 시인 / 초분 (草墳)

 

 

  화랭이가 안내한 바닷길 구만리

  살은 볏짚으로 덮고

  뼈는 갈매기 둥지에 품고 살아가리

  남도 바람에 세간일 듣고

  관고개 넘나드는 까마귀등에서 날 보내다가

  낡은 어선으로 어망질하여

  한 삼 년 살다보면

  조금 서운해도

  품은 뼈에선 극락조가 날으리라

 

  팔목의 한은 염기로 녹슬이고

  동공은 낙숫물로 씻다보면

  두고 온 아내는

  3년 길 다간 후에

  다시 둥질 틀어 품다보면

  사방으로 사방으로

  외로운 삼 년이 지나리라

 

  아!

  서러운 남도 바람에

  네 귀는 떨리고

  볏집은 흐트러져도

  다시 삼 년은 지나리라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장대송 시인 / 해질녘 탱고

 

 

산 넘어가는 해를 보는 노인의 눈 속에, 지난해 옮겨 심은 대추나무가, 늙은 대추나무가 대추 하나 달지 못하고 몸살을 않는다 대추나무 가지에, 거미줄이 쳐져 있고, 거기 매달린 잠자리 앞에서 거미가 탱고를 추고 있다 노을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노을을 잡기 위해 구절초 꽃을 바라본다. 이 자리에 내년에도 노을은 무성할까 추암해수욕장 촛대바위에, 저녁 햇볕을 주체할 수 없어, 젖가슴이 한쪽만 있거나, 애꾸눈인 과부의 허벅다리를 생각하다가 술취한 어부가 썰어준 회를 집으려는데, 젓가락이, 주책없는 젓가락이, 뽀얀 속살을 보더니, 탱고를 추고 있다

 

시집 『스스로 웃는 매미』(문학동네, 2011)중에서

 

 


 

장대송 시인

1962년 충남 안면도에서 출생. 한양대 국문과와 同 대학원 졸업.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초분(草墳)〉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옛날 녹천으로 갔다』(창비, 1999), 『섬들이 놀다』(창비, 2003), 『스스로 웃는 매미가 있다』(문학동네, 2012)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