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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점용 시인 / 달마도를 걸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

김점용 시인 / 달마도를 걸다

 

 

  못 박는 일은 쉽지 않다

  단단한 시멘트벽

  겨우 자리를 잡았다 싶어 조금만 힘을 주면

  튕겨나가고

  튕겨나간다

 

  사람들도 그렇지

  내 사람인가 싶을 때

  속잎에 비치던 눈물

  녹이 슬고

  등을 보이고

 

  더 이상 기다리는 일 없을 때

  패인 못 자국

  닿을 수 없는 그림으로라도 덮어보자고

  의자 위에 발끝을 들고

  조금 더 위에

  조금 더 위에

 

  천장을 뚫고 윗집 7층의 벽에 22층의 벽에

  아파트 옥상에 뜬 둥근 달의 거실에

  달에도 못 걸고 그 위에 더 높고 먼 별의 창문에

  별이 아니라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별빛에 못질을 하며

  우리부리한 눈빛의 달마도를 걸고

 

  먼 별빛

  자꾸 헛것 가리키는

  퍼렇게 멍든 손가락에 못질을 하며

  날마다

  날마다

  입 꾹 다문 달마도를 걸고

 

2011년 제2회 〈시산맥작품상〉수상작

 

 


 

 

김점용 시인 / 빈 화분

 

 

베란다에 빈 화분이 하나

오래 전부터 놓여 있다

 

언젠가 분재에 열중인 사람에게

어린 나무를 너무 학대하는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자

화분에 옮겨진 자체가 모든 식물의 비극 아니겠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빈 화분

그동안 실어 나른 목숨이 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생각하면 마흔 넘게 나를 옮겨 담은 화분도 아득하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던

가족, 학교, 군대, 사랑, 일터, 오 대~한민국!

결국엔 우리 모두 지구 위에 심어졌다는 생각

 

목숨 붙은 걸 함부로 맡는 법 아니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겁도 없이 생을 물려받고 또 물려주는지

 

빈 화분

그 오랜 공명이 오늘

아직 씨 뿌리지 못한

빈 몸을 울리고 지나간다

 

어찌하여 화분은

화분이 되었는지

 

시집 『메롱메롱 은주』(문학과지성사, 2010) 중에서

 

 


 

김점용 시인

1965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와 同 대학원을 졸업. 1997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 『오늘 밤 잠들 곳이 마땅찮다』(문학과지성사, 2001) 가 있음. 현재 시산맥 편집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