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용 시인 / 달마도를 걸다
못 박는 일은 쉽지 않다 단단한 시멘트벽 겨우 자리를 잡았다 싶어 조금만 힘을 주면 튕겨나가고 튕겨나간다
사람들도 그렇지 내 사람인가 싶을 때 속잎에 비치던 눈물 녹이 슬고 등을 보이고
더 이상 기다리는 일 없을 때 패인 못 자국 닿을 수 없는 그림으로라도 덮어보자고 의자 위에 발끝을 들고 조금 더 위에 조금 더 위에
천장을 뚫고 윗집 7층의 벽에 22층의 벽에 아파트 옥상에 뜬 둥근 달의 거실에 달에도 못 걸고 그 위에 더 높고 먼 별의 창문에 별이 아니라 보일 듯 말 듯 가느다란 별빛에 못질을 하며 우리부리한 눈빛의 달마도를 걸고
먼 별빛 자꾸 헛것 가리키는 퍼렇게 멍든 손가락에 못질을 하며 날마다 날마다 입 꾹 다문 달마도를 걸고
2011년 제2회 〈시산맥작품상〉수상작
김점용 시인 / 빈 화분
베란다에 빈 화분이 하나 오래 전부터 놓여 있다
언젠가 분재에 열중인 사람에게 어린 나무를 너무 학대하는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자 화분에 옮겨진 자체가 모든 식물의 비극 아니겠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빈 화분 그동안 실어 나른 목숨이 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생각하면 마흔 넘게 나를 옮겨 담은 화분도 아득하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던 가족, 학교, 군대, 사랑, 일터, 오 대~한민국! 결국엔 우리 모두 지구 위에 심어졌다는 생각
목숨 붙은 걸 함부로 맡는 법 아니라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겁도 없이 생을 물려받고 또 물려주는지
빈 화분 그 오랜 공명이 오늘 아직 씨 뿌리지 못한 빈 몸을 울리고 지나간다
어찌하여 화분은 화분이 되었는지
시집 『메롱메롱 은주』(문학과지성사, 201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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