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시인 / 산이 날 에워싸고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 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박목월 시인 / 우회로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이 깔렸다. 밤은 에테르로 풀리고 확대되어 가는 아내의 눈에 달빛이 깔린 긴 우회로 그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메스를 가아제로 닦고 응결하는 피. 병원으로 가는 긴 우회로 달빛 속을 내가 걷는다.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혼수 속에서 피어 올리는 아내의 미소(밤은 에테르로 풀리고) 긴 우회로를 흔들리는 아내의 모습 하얀 나선 통로를 내가 내려간다.
박목월 시인 / 윤사월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운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
'◇ 시인과 시(근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목월 시인 / 청노루 외 2편 (0) | 2019.06.17 |
---|---|
김영랑 시인 / 모란이 피기까지는 외 4편 (0) | 2019.06.16 |
박목월 시인 / 난 외 2편 (0) | 2019.06.15 |
박두진 시인 / 바다 외 2편 (0) | 2019.06.15 |
박목월 시인 / 가정(家庭) 외 2편 (0) | 2019.06.14 |